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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넘어서려면
2021년 11월 11일 09시 16분 입력

 

 


            김 찬 호
성공회대 교수
 2018년 500명의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 그들을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여겨 수용을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 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그 모두가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편견은 줄어들지 않아서,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종교만이 아니다. 출신 지역, 성적 취향, 직업, 나이, 질병 이나 신체장애, 빈부 등 여러 가지 범주를 중심으로 온갖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관계를 위축시킨다.

 우리가 접하는 각종 미디어에는 엄청난 볼거리들이 넘쳐난다.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에서 연예인들의 내밀한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뉴스들이 매일 쏟아진다. 게다가 SNS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이 만화경처럼 진열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무의미하고 하찮은 존재로 주변화되는 것이고, 투명인간으로 취급되면서 사회의 성원권이 박탈되는 것이다. 비대면에 수반되는 비가시화, 타인이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사물로 대상화되는 소외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일상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야 한다. 부자와 빈자, 노인과 젊은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자국인과 외국인 등 이질적인 범주의 사회 구성원들이 마주치고 교류하는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 그것을 겨냥한 특별한 축제 등의 이벤트도 좋지만, 자연스럽게 섞이는 공유 공간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거주지 근처에 녹지나 공원, 도서관, 문화센터, 공연장, 전시장 등이 풍부하다면 그 안에서 이뤄 지는 여러 활동을 통해 일상의 공통분모 를 다채롭게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소셜 믹스’는 점점 심각해지는 적대와 혐오의 집단 정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편견과 차별은 집단 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효과적으로 줄어 들 수 있다.
 조직 안에서의 소셜 믹스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에서는 모든 임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합창단을 운영하는데, 거기에서 간부와 청소부가 함께 노래를 연습하고 공연을 준비한다. 그러다 보면 일상 업무 환경에서 거의 대면할 수 없 었던 이들이 동등한 단원으로서 만나고 서로에게 친숙해진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던 생각들이 차츰 허물어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위직 멤버는 말단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일반 사원들은 상급 관리자들이 어떤 압박과 책임감에 시달리는지를 새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물리적 접촉은 창의성을 증진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실리콘 밸리에서 연구자들은 식사나 휴식을 취하면서 전공이나 직무의 경계를 넘어서 인연을 맺게 되는데, 소소한 대화 중에 참신한 발상 이나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얻게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본사를 설계할 때 건물 중앙에 ‘만남의 광장’을 조성했는데, 개발자, 예 술가, 시나리오 작가 여러 분야의 직원들이 수시로 대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공간에는 회의실, 카페, 편의점, 화장실 등이 배치되어 있어서 잠깐 휴식을 취하거나 어떤 용무를 위해 그곳을 지나치다가 서로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구글의 경우에도 회사 건물 복도의 폭을 일부러 좁게 만들어 직원들이 ‘밀접’할 수 있도록 했다.
 어떤 목적을 위해 기획되지 않은 여백 에서 우연한 만남이 연출되고 의외의 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팬데믹으로 재택근무와 화상 회의가 늘어나면서 온라인이 비본질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일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해주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비대면의 근본적인 한계는 여전히 남아있다. 수다와 잡담을 통해 얻어지는 비공식적 정보들, 몸으로 함께 있으면서 공유하는 중층적인 맥락, 눈빛과 표정과 몸짓으로 오가는 섬세한 뉘앙스들, 그 복합적 신호들이 마주쳐서 생성 되는 아이디어… 그러한 대면의 미덕을 어떻게 살려갈 것인가가 앞으로 과제로 다가온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chan-ho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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