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보게 된 TV 프로그램이 <비긴 어게인>이다. 처음에는 국내 정상급 가수들이 외국의 소도시에 가서 버스킹을 한다는 설정에 거북함을 느꼈다. 한국의 정상급 가수가 다른 나라의 소도시에 가서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한국인은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는가? 한국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몇 회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 우리의 노래를 색다른 분위기 속에서 들려주는 게 프로그램의 의도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노래의 울림이 더 커짐을 느꼈다. 필자가 <비긴 어게인, 새마을정신>을 떠올린 것은 지난 11월 새마을세계화 재단이 주최한 <어떻게 다 함께 잘할까?> 라는 주제의 새마을운동 국제포럼에 토론자로 참여했을 때다. 이전까지는 <새마을신문>에 실리는 제3세계 새마을 지도자의 경험담을 읽으면서도 솔직히 그 울림이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국제포럼에서 여러 나라 새마을운동의 사례를 들을 때에는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새마을운동을 칭찬해 주어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감동이었다.새마을운동을 한물간 농촌운동이라고 보거나, 정부 주도의 관변 운동이란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세계 상위권으로 도약한 국가가 지금도 후진국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느냐? 하며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마치 내가 <비긴 어게인>에 거북한 심정과 부끄러움을 느낀 것처럼. 새마을정신의 핵심은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이다. 정부가 시켜서가 아니라 참여자들 스스로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협동하며 변화를 이뤄내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빈곤한 지역의 마을 지도자도 동남아시아 밀림지역의 마을지도자에게도 더 나은 삶을 위한 출발점은 바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데 있다. 이러한 새마을정신의 보편성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새마을운동이 뿌리내릴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이유다.국제포럼에서 인상 깊었던 발표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의 사례였다. 자기 나라에도 ‘새마을정신’에 해당하는 전통이 있었지만, 그 전통이 사라졌는데, 한국의 새마을운동 사업을 통해서 농촌주민들이 다시 오랜 전통을 되살리며 농촌 살리기에 나섰다고 한다. 우리가 보여준 성공적인 사례와 실천방식이 오랫동안 잠자던 정신을 되살리는 촉매제가 되고, 실제적인 마을 운동의 모범이 된 것이다. 스리랑카의 고위 관료로서 한국에서 공부하는 한 대학원생의 발표도 인상적이었다. 스리랑카의 유사한 농촌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마을과 새마을운동 시범 마을을 조사하여 성과를 비교했는데,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이 더 탁월한 성과를 내었다고 한다. 새마을 시범 마을의 지도자들은 출석하지 않으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규정에 따라 교육시간에 꼭 출석했고, 필요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또, 정부가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실시했기 때문에, 수동적인 농민에서 적극적인 활동가로 바뀌고 단기간에 커다란 소득 증가를 체험했다. <비긴 어게인>은 자신 속에 감춰진 재능을 새롭게 깨닫는 순간에 시작한다. <비긴 어게인, 글로벌 새마을운동>은 제3세계 농민들이 잠재한 힘을 자각하고, 숨겨진 재능을 키워 삶을 변화시키려는 순간에 시작한다. 새마을운동의 ‘수출’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들의 칭찬에 배고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마을정신은 관이 주도하는 하향식도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농민이, 스리랑카의 농민이 우리의 작은 도움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고, 자신감을 갖는 모습에서 우리는 또 다른 감동을 하기 때문이다. <비긴 어게인, 새마을운동>. 노래 부르자, 다 함께, 더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