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이면 모든 한국인이 몸살처럼 도지는 병이 하나 있다. ‘노벨상’에 대한 갈증에서 오는 마음의 병이다. ‘혹시나 상 수확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었다가 이내 실망으로 끝나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
올해 국내 언론들은 노벨화학상 분야에서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를 주목했다. ‘노벨상 족집게’로 불리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도 올해의 노벨화학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해 더욱 기대가 컸다. 결과는 역시 ‘꽝’이었다.
노벨상 갈망이 깊어지는 만큼 이웃 나라 일본에 대한 선망도 커진다. 우리는 하나도 못 받는데 일본에서만 풍년을 이루는지 부럽기만 하다. 2000년 이후로만 보면 과학계열에서의 일본의 수상 실적은 미국에 이어 2위다.
한국은 뒷심이 강한 저력의 국가다. 해방 이후 전 국토가 폐허가 됐지만 특유의 교육열과 성실성을 자산 삼아 기적처럼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선진국이 된 것이다.
어디 경제력 뿐인가. 문화 분야에선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1위를 꿰찬 BTS가 있고, 올해 아카데미 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를 훑어보더라도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그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인정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노벨상 앞에선 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한국은 왜 유독 노벨상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열의가 부족한 것도, 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노벨상 수상을 밥 먹듯이 하는 일본의 비결은 뭘까. 한동안 과학계를 취재했던 필자에겐 이맘때쯤 드는 의문점 중 하나였다. 언론의 분석 기사는 대략 서너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일본 등 다수의 수상자 배출국은 이미 1백년 가까운 시간과 막대한 연구비를 들여 투자를 해온 반면 우린 투자를 시작한 지 겨우 20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연구의 내공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의미다.
둘째 일본은 기초과학 우선인데, 한국은 응용 분야 연구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사실 여하를 떠나 단기간에 고도 성장을 해내야 했던 한국적 상황을 모르고선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셋째는 연구 환경의 차이다. 일본 과학자들은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이 조성돼 있는데, 우리는 외부 간섭이 지나칠 정도로 심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연구활동보다는 연구비를 조달한 정부기관, 연구재단 등 외부기관 보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게 우리 과학계의 쓰라린 현실이다. 그 외에도 국내 연구자와 해외 연구진과의 네트워크 문제, 일본의 장인 정신 등이 거론되지만, 이를 우리 현실에 갖다 붙이기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스타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게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가.
대중음악계의 BTS, 영화계의 봉준호 감독이 부상하기까진 수많은 도전과 인고의 시간, 집적된 역사가 필요했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연구 문제를 푸느라 꼬박 밤을 새우는 수많은 과학계의 스타들이 국내에 포진해 있다.
그런 노력의 성과들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실제로도 한국연구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유룡 카이스트 교수와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를 비롯해 김광수·석상일·조재필 UNIST·김종승 고려대·선양국 한양대·윤주영 이화여대 교수 등이 노벨상에 근접한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생리의학에선 세계적 석학으로 불리는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가 단연 앞서 있다. 그는 올해 4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고해상도 유전자 지도를 세계 최초로 공개해 주목받기도 했다.
때는 무르익었다. 7전8기의 홍수환 선수가 이국만리 외지에서 시원한 한 방으로 국민의 시름을 씻어내 준 것처럼 과학계의 홍수환이 회심의 한 방으로 세계를 제패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