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귀어한 이종림씨는 과거 중견 건설사를 운영했었다. 건설관련 단종면허 5개를 보유하고 있어 대형프로젝트도 따내는 등 시쳇말로 그런대로 잘 나가던 기업이었다. 장장 8년간을 운영해 왔는데,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어렵게 따낸 프로젝트가 타의에 의해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사업을 운영할 의욕마저 잃었다. 2001년의 일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뉴질랜드가 이민자에게 문호를 개방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 삶을 꿈꾸며 2002년 2월,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당시 큰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다. 뉴질랜드에서는 와인 도소매업을 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사업이 자리를 잡았고 이민자로는 성공했다.이민생활 10년이 지나 아이들이 성장하고 각자의 생활을 찾게 되자, 고국에서의 생활을 생각하게 됐다. 타국에서 외롭게 사는 것보다 태어나고 자란 고국에서 아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남을 생을 보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생각은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2011년 9월, 10년간의 이민생활을 접고 귀국했다.귀국해서는 지인의 소개로 제약회사 영업담당 임원으로 3년간 일을 했다. 뉴질랜드에서 모은 돈으로 생활에 여유는 있었지만 활동하는 것이 좋아서였다. 귀어 동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데서 나왔다. 평소 바다와 어촌을 동경하며 바다낚시를 즐겨했던 이 씨가 울진지역에 왔다가 구산항에 들러 우연히 현지 어민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동기가 된 것이다. 당시 귀어귀촌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무렵이었다. 이 씨는 귀어해서 할 수 있는 일과 수익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귀어를 결심하게 됐다.
아버지 따라 아들도 귀어귀촌
결심했다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이 씨, 2015년 5월, 경기도 부천에서 경북 울진 기성면 구산리로 이사부터 했다. 그리고 해양수산인재개발원에서 4박5일간 귀어귀촌 1기생 교육을 받았다. 어촌 정착방법, 귀어자 지원방법 등 귀어에 대한 일반적이고 개략적인 내용이었다.이 씨가 귀어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자격증 취득이었다. 포크레인, 지게차, 굴삭기 운전기능사 자격증 뿐 아니라 1종 대형면허까지 취득했다. 또한 수상동력레저기구 조종면허를 따고 25톤 미만의 선박을 운행할 수 있는 소형선박 조종사 면허, 무선통신사 면허도 취득했다. 완벽하게 귀어 준비를 한 것이다.이종림 씨의 작은 아들 용한(29) 씨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을 졸업한 후 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며 취업을 고민할 즈음, 아버지로부터 귀어귀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혹시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스런 마음에 아버지를 따라 울진으로 왔다. 먼저 아버지가 살기로 했다는 마을로 가서 동네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이어서 울진군청에서 아버지와 함께 귀어귀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용한 씨는 아버지가 살기로 한 마을에서 어촌계장이 서울 직장보다 소득이 높다는 말을 할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군청직원이 어촌생활에 대한 자료와 사례를 들어가며 비전을 제시할 때는 수긍이 가고 귀가 솔깃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어서 구산항 어촌계 위판장에서 활문어 위판광경을 보고는 직장 다니는 형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정년퇴임도 없는 곳이 아닌가. 용한 씨도 귀어를 결심했다. 거친 파도와 싸워야 하는 바닷 일, 특히 배를 다루는 일이 녹록치 않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용한 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뉴질랜드와 부천에서 3D업종에 속하는 힘들고 어려운 아르바이트까지 해봤기 때문이다.
어선중개업과 수산물품질관리사
2016년 11월, 3억 원을 들여 연안복합 어선을 구입했다. 문어단지·낚시 등 복합어업과 연안자망·연안통발을 할 수 있는 허가어선이다. 톤수를 바꾸고 엔진을 교체하는데 1억 1천만 원이 더 들었다. 금융알선 귀어자금 1억 원에 영어자금 3천6백만 원을 지원받았다. 어업경력이 짧고 어업허가는 담보가 되지 않아 초기귀어자금을 지원 받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귀어한 사람이 업력이 없음은 당연한 일인데, 법이 정해 놓은 것은 현실과 괴리가 있었다. 면세유류를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4개월간에 걸쳐 어선을 수리하고 출어준비를 한 끝에, 지난해 4월 15일, ‘펠릭스153’ 의 첫 출항을 시작했다. 낚시 손님 10명을 태우고 왕돌초로 첫 출조를 나갔다. 80만 원에 독배로 나간 것이다. 구산항에서 왕돌초까지는 1시간 거리. 7시간 동안 좋은 낚시성과를 올리고 귀항 했다. 성공적인 첫 출항이었다. 왕돌초는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킬로미터 떨어진 거대한 수중암초로 대게를 비롯해서 방어, 부시리, 대구, 우럭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어 예로부터 동해안 지역 어민들의 어로구역 일뿐 아니라, 바다 낚시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낚시어선은 대체로 일 년치 예약손님을 받는 것이 관례. 펠릭스153은 조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연간 예약을 받지 못하고 다른 배에서 남는 인원으로 운용 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자체적으로 낚시손님을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낚시객이 없을 때는 부자가 마을 앞바다로 나가 가자미나 광어 낚시를 한다. 잡아온 고기는 동네횟집에 넘기고 많을 때는 위판장으로 가지고 간다. 낚시가 되지 않는 날도 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낚시가 잘되는 가을철에 왕돌초로 나가 방어, 부시리 등 대어를 낚아 올리면 하루 수십만 원의 벌이는 되기 때문이다. 문어철에는 연안에 깔아 놓은 통발로 잡아내는 문어 수익도 쏠쏠하다. 이 씨 부자는 10월 중순까지 왕돌초 출조를 40여 회 하여 5천만 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이종림 씨는 이제 낚시어선은 아들 용한 씨 에게 맡기고 자신은 귀어인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공인 어선중개사 일이다. 지금까지 어선거래는 비공개시장에서 이루어져 문제가 많았다. 이 씨 자신도 배 구입에 힘들었던 점을 생각해서 앞으로 등록된 어선중개업을 해 볼 생각으로 얼마 전 어선중개업 교육을 이수했다. 또 수산물품질관리사 자격증 도전에도 나섰다. 어촌에는 일손이 부족해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숙식제공하고 월 150만 원 정도 지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씨는 정부가 중소기업에만 취업보조금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도시 젊은이들이 어촌의 어업인과 고용계약을 맺고 어업에 종사하면 일정기간을 정해 급여보조금을 지원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는다. 젊은이가 없는 어촌에 활기를 불어 넣고 어촌 공동화 현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 이 씨는 자신의 아들이 현재 어촌에 적응하며 보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하는 이야기다.이 씨는 또 어촌의 종합관광단지화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 어촌도 한정된 수산자원에만 의지 할 것이 아니라 주변의 관광자원을 활용한 관광소득 증대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가 한데 어우러지는 종합관광어촌이 돼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바다낚시를 온 손님이 마을 숙박업소나 식당, 백암온천 등 주변관광지를 이용할 경우 비용을 할인해주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서로가 ‘윈윈’하는 관광산업이 될 것으로 본다. 그 꿈이 이루어져 모두가 잘사는 어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자료제공 :귀어귀촌종합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