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잘 알려진 저작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고 설명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고 도킨스는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도킨스도 인간만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반란을 일으킬 힘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이 지구에서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적어도 인간에게는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따질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고 도킨스는 보았던 것이다.우리가 비록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장래의 일을 내다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맹목적인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 줄 수 있다. 인간이 자신들의 미래를 내다볼 능력이 없어 당장 생존경쟁에만 급급하다면 진작에 공멸의 상황을 초래했을 것이다. 환경을 파괴하여 기상이변을 낳고 핵무기를 개발하여 재앙의 위험을 낳았지만, 그래도 그 위험을 알고 개선의 협력을 도모하기에 인간들은 공멸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본성적으로는 이기적인 존재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여 함께 살아감으로써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다.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높은 윤리의식의 소산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에 대한 책임의 윤리를 갖고 사는 존재다. 예를 들어보자. 세월호가 침몰한 것과 나는 아무런 직접적 관련이 없다. 평범한 시민으로서 나는 그저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참사의 현장을 지켜봤을 뿐이고, 그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의식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세월호 참사가 나를 포함한 ‘우리의’ 책임이라고 느꼈다. 이윤에 눈이 멀어 아이들이 탄 배를 무리하게 출항시킨 해운회사, 단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한 무능한 정부를 방치하여 그런 참사를 낳았던 것이 결국 우리의 책임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아픔이 계속되는 시간 동안 많은 국민은 자신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 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힘든 시간을 그렇게 보내야 했다. 이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의 윤리이기도 하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우리에게는 합의가 필요없는 연대 의무, 소속의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한데 묶여 있다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의 노년기에 부양하기로 약속한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가족으로서의 당연한 책임이듯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나는 동료 시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기여할 공동의 책임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 바탕은 도덕적 힘이다. 나에게 도덕적 힘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연대의 책임을 지려 할 것이다. 야스퍼스가 말했듯이 인격을 갖춘다는 것은 여러 부담을 인식하며 산다는 뜻이다. 그렇듯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갖고 있다. 나 하나만 생각하고 산다면 때로는 편하고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다. 인간이라는 특별한 삶의 기회를 얻어 사회라는 서사의 일부로 태어난 나라는 존재는 그에 합당한 여러 요구들을 받고 있다. 나를 넘어 더 넓은 세계의 지평에 눈을 뜨고 그 속에서 나의 존재를 생각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내가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적인 것 중에 나와 무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로마 작가 테렌티우스의 말은 그래서 오늘에도 되새길만 한다. 새마을운동도 함께 잘 살기 위한 운동이다. 나만의 이익을 넘어 더불어 살 줄 아는 인간의 도덕적 능력에 대한 신뢰가 새마을운동의 바탕에는 깔려있다. 그 숭고한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오늘 새마을운동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