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에 구동독 지역을 방문했다. 통일 이후 산업경쟁력을 잃어 실업자가 증가하고, 청년들은 구 서독 지역으로 떠나버려 사회적 경제적 위기에 처한 소도시들이 어떻게 위기에 대응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방문 중 독일의 소도시에서 만난 폴란드 이주 여성이 던진 한 마디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폴란드의 최대 무역항인 그단스크(옛 독일명, 단치히)에서 온 그녀는 독일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체념한 듯하지만, 그리움과 소망을 섞어 담담하게 답했다. “돈을 벌려고 독일에 와서 사는 겁니다. 돈이 모이면 고향으로 돌아가야죠, 당연히.” 영어로 말하던 그녀는 고향을 말할 땐 “하이마트(Heim at)”라고 독일어를 사용했다. 고향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고향을 생각하는 그 이주 노동자의 마음은 구동독 청년의 마음이며, 중소도시를 떠난 많은 한국 청년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소도시의 많은 젊은이가 대도시로 떠난다. 지방 소도시와 농촌은 젊은 층의 유출로 고령화하고 쇠퇴하며, 과도하게 밀집된 대도시는 높은 집세와 과도한 경쟁으로 젊은이들을 피폐케 하고,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게 한다. 이렇게 인구가 감소하고, 소비력이 떨어진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된다. 활력을 상실한 사회는 대도시를 한층 더 과밀케 하고, 격심한 경쟁, 삭막한 삶을 만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고향을 등지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니 어쩔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먼저,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극심하다. 청년들이 대도시의 화려함과 다양성에 매력을 느끼지만, 소도시의 편안함과 인간적 친밀성에 매력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경우 청년들은 적절한 일자리가 없고, 생활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고향에서 떠밀려 나가는 것이다. 청년들이 지방을 사랑하고 지키기를 원한다면, 그들이 고향에 머물고 고향에 돌아가게 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들이 고향에서 일할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수도권 편향성을 줄이면 된다. 대도시에 있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대도시 편향적인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조금만 생각을 바꿔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수도권 집중률이 세계 최고이고, 집중률은 더욱 높아 가는데 우리의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현 단계의 한국경제가 요구하는 것은 더는 모방과 밤샘 작업이 아니라, 상상력과 여유 있는 삶 속에서 우러나는 창조적 문화다. 이를 위해서는 맹목적인 경쟁에 휩쓸리는 대도시가 아니라, 개성과 성찰력을 살릴 수 있는 소도시가 번창해야 한다. 중소도시에 자리 잡은 대학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거대도시는 위대하며 경쟁력 있다는 편견을 버릴 때다. 중소도시에서 새 시대의 활력과 경쟁력이 나올 수 있다. 중소도시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도 편견이다.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대규모의 설비와 좋은 인재의 유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이 결여된 중소도시가 제공할 일자리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찾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판단은 단견이다. 우리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거리와 시간이 압축된 시대에 살고 있으며, 한국사회는 서비스 경제로 돌입하였다. 제조업시대에 지방도시가 취약했던 약점은 쉽게 보완될 수 있고, 주거환경과 자연환경이 좋은 지방도시의 매력은 약점을 만회하고도 남는다. 지방에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다. 고향에서 즐겁게 일하는 청년을 위한 방안은 쉽게 제시할 수 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도시 생활의 양적 성장에 몰입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방에서 꽃피울 삶의 질적 향상에 눈을 돌릴 때다. 이런 전환은 필요하며, 피할 수 없다. 한국사회를 한층 더 향상시키기 위해서, 고향 떠난 청년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