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면 어른들의 말씀을 흘려듣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적지 않다. 유념했다면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어도 됐고, 더 좋은 결과도 얻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그런 경험들이다. 어른들의 이런 저런 말씀은 삶의 훌륭한 교범이 되고는 한다. 한마디 한마디에 선대로부터 켜켜이 쌓여온 지혜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리라. IT(정보기술)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문명의 이기가 아무리 최첨단을 달리더라도 사정은 다를 것 같지 않다. 무수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치더라도 그런 정보는 단순한 앎의 수준에 그칠 뿐 생활의 지혜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단순한 앎은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존재 기간도 짧아지게 마련이다. 기술적인 지식은 더욱 그렇다. 항아리 속에서 오래 숙성된 된장처럼 어른들의 말씀이 쉽게 빛바래지 않는 울림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과는 대조적일 수밖에….사계절 중에서 겨울은 산천초목이 쉬는 기간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쉼은 결코 쉼이 아니다. 한 겨울 내내 다음의 봄과 여름과 가을을 준비한다. 겨울은 그래서 휴지기이면서도 치열한 준비기이기도 하다. 계절이 계절다워야 하듯 겨울도 겨울다워야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의 자연이치가 그렇다.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도 추워야 겨울이다. 그래야 휴지기이자 준비기를 보내는 만물이 제자리를 잡는다. 올겨울의 가뭄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준비가 필요함을 알려준다. 도시인에게 겨울에 내려 쌓인 눈은 질척임과 치움의 대상인 귀찮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자연계 기준으로는 사정이 달라진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존재로 탈바꿈한다. 산과 들에 쌓인 눈은 봄철 날씨가 풀리면서 서서히 녹기 마련이다. 비는 내리는대로 강으로 흘러가지만 눈은 녹는 내내 대지를 적신다. 초목이 한 창 물기를 필요로 하는 그 즈음 머금은 물기를 시나브로 풀어놓는다. 대지 위를 덮은 눈은 겨울 한철 훌륭한 보온재 역할도 한다. 땅속에 동면중인 식물들의 새싹을 포근히 감싸 안으면서 말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을 보기가 어려웠다. 겨울 가뭄이 일상적인 표현일 정도다. 서울 근교 산과 들에는 쌓인 눈을 보기 힘들다. 제설의 번거로움은 줄었으되 다른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소방당국은 벌써부터 봄철 산불을 걱정하고 있다. 산림이 우거진데다 낙엽도 두텁게 쌓여 산불이 났다하면 그 위세가 보통 강력한 게 아니다. 농업용수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따뜻한 겨울’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도 사용 빈도가 부쩍 늘었다.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 날은 두 손으로 꼽고 남을 정도다. 오죽하면 겨울철 전기가 남아도는 현상을 날씨의 영향으로 풀이하는 분석까지 나왔을까. 국가기후데이터센터에 따르면 작년 겨울(2017년 12월~2018년 2월)의 전국 평균 기온은 영하 0.8도였다. 올 겨울은 대략 1.5도 높은 영상 0.7도로 조사됐다.매서운 겨울 추위는 시련이기도 하지만 자연이 주는 혜택이다.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이라고 느낄라치면 “올해 농사에 병충해가 얼마나 극성을 부릴지”라는 어른들의 걱정스런 한탄은 이런 자연의 이치에서 비롯됐다.겨울답지 않은 겨울에 대한 어른들의 말씀은 적지 않은 대비가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그렇지만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와야 한다는 계절적 정의에도 변화는 생기고 있다. 북상하는 영농한계선이 대표적이다. 강원도 접경지역에서 자라는 사과와 포도, 영호남지역 비닐하우스에서 자태를 보이는 열대과일은 수십 년 전 상상이나 했을까. 겨울답지 않은 겨울에서 정치 경제 사회로 눈을 돌려보자. 어느 하나 만만해 보이는 것이 없다. 겨울지나 봄 오듯, 영농한계선이 따뜻한 기후에 적응하듯 잘 이겨내고 극복하면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선대의 지혜를 발판 삼아 슬기롭게 도약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