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은 ‘2019 FIFA U-20 남자 월드컵’ 경기로 행복했나니. 동시대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았을까. 9일 새벽 열린 한국과 세네갈의 8강전은 ‘드라마틱(극적)’이라는 단어가 어느 때 쓰여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경기장인 폴란드 비엘스코 비아와 스타디움의 관중 분위기는 말 그대로 청룡열차를 탔다. 각본을 짰더라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의심할 정도였다. 경기 흐름은 연장전 이후 이어진 승부차기에서도 엎치락뒤치락했다. 실축과 골키퍼 선방과 골이 뒤섞이다가 한국의 승리로 결판났다. 관중과 시청자들만 마음을 졸였을까. 선수는 물론 감독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래서 믿기 힘든 결과라는 표현이 쏟아졌을 거다. “말도 안 되는 경기(이지솔 선수)” “꾸역꾸역 (승리를 일궈 낸) 팀(정정용 감독)”이라고 했다. 결승전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끝났지만, 한국팀은 우승 못지않은 결실을 얻었다. FIFA 주최 국제대회 사상 첫 준우승이란 기록을 고국에 안겼다. 10여 년전 전파를 탔던 모 방송국 프로그램인 ‘슛돌이’에서 갈기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던 ‘막내 형’ 이강인은 가장 어린 나이에 골든컵을 받은 선수로 FIFA 역사에 기록됐다. 한국팀이 승리를 얻어낸 원동력은 무엇보다 믿음이다. 팀워크나 원팀이라는 표현이든, ‘막내 형’ ‘막내 리더십’이라는 성립하기 힘든 조어이든, ‘졌지만 이겼다’는 반어법적 관전평이든 그 바탕에는 믿음이 있었다. 선후배를 믿는 선수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상호 신뢰, 팀에 대한 팀원의 믿음, 선전을 믿는 국민이 함께 이뤄낸 결실이었다. 준우승 신화를 견인한 이강인 선수는 “팀을 믿었다”고 했다. 세네갈 8강전 승부차기 마지막 순서였던 오세훈 선수도 “두 번 차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팀의 든든한 신뢰를 버팀목 삼았기에 위기에서도 침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한밤중임에도 전국 곳곳에서는 ‘대~한민국’을 외치며 축구팀에 믿음을 보내는 열렬한 응원전이 펼쳐졌다. 상암동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한 전국 주요 축구장, 서울 강남역 일대 등에서는 여지없이 응원단이 구름처럼 몰렸다. 응원 열기는 배달전문 업체에 하루 최대 주문이라는 기록도 남겼다고 한다. 경기 운영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2019년 U-20 월드컵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VAR(Video Assistant Referees)이 꼽힌다. 반칙이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VAR은 이른바 중재와 조정과 운용의 묘를 극대화했다. 경기에 대한 믿음은 당연히 극대화됐고, 승자와 패자 모두 당당함을 가질 수 있었다. VAR이 없었어도 ‘한국 세네갈 8강전’이 그토록 통쾌할 수 있었을까. 모두 경기 결과에 승복할 수 있었을까. 심판이나 중재자나 조정자는 그래서 중요하다.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담보하지 못했다면 세네갈전은 ‘진흙탕 속 싸움’으로 전락했을 것이 뻔하다. 축구장에서 나라 안팎의 정치‧경제‧사회‧외교로 눈을 돌려보자.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쌍방이나 다수의 엇갈리는 주장과 입장을 객관적 기준을 바탕삼아 조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재 역할에 대한 믿음이다. 색깔이나 진영의 다름에도 정의와 공정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다. 지금은 혼란스러워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발전과 전진을 위한 밑거름이라는 믿음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런 믿음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취업난으로 겪고 있는 젊은이들의 고통은 곧 사라질 거라는, 노와 사는 화합과 균형으로 함께 더 나아갈 거라는 믿음 말이다. 규제개혁으로 탄탄한 신성장 사업 기반이 마련되고, 정부 정책은 더 큰 성과를 내면서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거라는 믿음 말이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은 국가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일 거라는 믿음 말이다. U-20 월드컵 한국 축구팀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이렇게 외친 것은 아닐까. “어른 바보들아, 문제는 믿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