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상남도 남해에 며칠 머물렀다. 그곳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몇 군데 있지만, 나는 그런 곳 못지않게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조용한 동네를 산책하면서 기웃거리다가, 쇠락해가는 상점가에서 서점 하나를 발견했다. 길가에 세워둔 작은 입간판과 건물의 외양이 사뭇 단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줬다. 수도권에서도 서점들이 문을 닫는 판에 이런 곳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관광객으로 보이는 손님이 서점에서 나오는 것을 보니, 주로 외지인들이 입소문이나 누리소통망(SNS)을 보고 일부러 찾아오는 장소 같았다.
궁금증을 품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구석구석 정성을 들여 꾸며놓아서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머물고 싶은 분위기였다. 비치한 책이 많지 않았지만, 조용히 삶과 마음을 성찰하기에 좋은 서적들을 잘 갖춰놓고 있었다. 예쁜 고양이도 한 마리 앉아 있어서 아늑함을 더해줬다. 그 모든 것에서 서점 주인의 품성이 물씬 풍겼다.
이렇게 외진 곳에 책방을 내겠다고 결심한 이는 도대체 누구일까? 이런 모험을 하기까지 그에게 어떤 인생 여정이 펼쳐져 왔을까?
그런데 주인이 손님을 대하는 방식이 좀 낯설었다. 30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내가 들어가니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나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러달라면서 커튼이 내려져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주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기대했기에 살짝 섭섭했다. 용무가 생겨서 자리를 비운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서점을 운영하면 손님 한 명 한 명이 반가워서 활짝 웃음으로 맞이할 법도 한데, 그는 감정노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다소 경계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진열대 한 코너에 그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쌓여 있었다. 주인이 쓴 것이어서 망설임 없이 구입해서 들고 나왔다. 숙소에 돌아와서 바로 펼쳤는데, 내가 물어보고 싶은 내용이 들어 있고 분량도 짧아서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서울의 어느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과로에 지쳐서 사표를 내고 도망치듯 땅끝의 섬마을로 내려온 사연, 그리고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는 일들을 담담하게 쓰고 있었다. 거기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를 왜 그렇게 썰렁하게 대했는지를.
‘책방 지기’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로망을 가진 (주로 외지에서 온) 손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들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여기 있으면 숨만 쉬어도 좋을 것 같아요. 나도 이런 데서 책방이나 하고 싶네”, “이런 곳에서 책방하면서 만날 책 읽으며 커피 마시면 참 좋겠어요”, “책방은 몸 쓸 일, 힘든 일도 없고 진짜 편할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해도 생계유지가 빠듯하고 책 읽고 커피 마실 틈이 별로 없이 육체노동을 많이 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제멋대로 짐작해 내놓는 발언들에 일일이 대응하기가 무척 피곤했다. 그래서 손님들과 가능하면 거리를 두기 위해 자신의 책상을 커튼 뒤로 옮기고 계산할 때만 나와서 친절하게 말을 건네게 됐다고 한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다. 드라마와 광고가 홍수를 이룬지 오래고, 요즘에는 개인들이 누리소통망(SNS)에 올리는 사진들이 우리의 시각을 점령한다. 그 모든 정보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긴 하지만, 현실 그 자체는 결코 아니다. 욕망을 자극하거나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연출된 영상들로서, 오히려 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정보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실재라고 착각하게 된다.
관계 맺기와 소통에서도 그 점에 유념해야 한다. 나의 경험과 지식과 느낌으로 상대방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처음 접하는 사람일수록 확신이나 선입견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질문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겸허하게 비울 때, 상대방도 경계 태세를 풀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일어날 때,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