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mentor)’라는 호칭이 너무 남발되는 시대다. 상당수 증권·교육용 유튜브에는 자칭 멘토라는 사람이 등장해 각종 강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강사라는 말보다는 멘토라는 말이 더 그렇듯 해 보여서일게다.
유튜브뿐만 아니다. 교육용 서적은 물론 심지어 성형외과에 이르기까지 저자나 의사란 말 대신 멘토라는 말을 쓴다. 정치권은 더 심하다. 수없이 많은 정치 멘토와 경제 멘토가 활동한다. 한 정치인은 “내게 멘토가 300명에 달한다”고까지 자랑했을 정도다.
신뢰할 수 있는 스승이나 조언자 정도로 알고 있던 멘토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그 어원을 찾아봤다. 그동안 단순히 외운 영어단어라고 생각해 무심결에 써왔는데 내용을 알고부터 아무에게나 멘토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 자칭 멘토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믿음이 떨어졌다. ‘사기’나 ‘과대포장’의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멘토는 결코 함부로 써야 할 호칭이 아니다.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라 그 말에는 섣불리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한 희생정신이 담겨 있다. 멘토는 그리스신화의 전쟁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올 때까지 무려 20년 동안 그의 아들을 돌봐준 친구 이름이다. 그리스어로는 멘토르다.
이타케 왕국의 왕이었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로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과 트로이 간의 1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략가로 호메로스가 쓴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이다. 그는 트로이전쟁 10년, 귀향길의 모험 10년 등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무려 20년 동안 말로 다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는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이 끝난 뒤 귀향하기까지 10년 동안 겪은 모험담을 그린 서사시다.
그러면 오디세우스가 떠나있던 20년이라는 긴 기간 가족은 어떻게 지냈을까. 아내는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독수공방 처지여서 수많은 남성의 구혼에 시달리고 아버지 없이 자란 아들은 약하고 소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고난을 이겨낸다. 모두 멘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집을 떠나 전쟁에 나서면서 친구인 멘토에게 아들과 가족을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멘토는 이 부탁을 목숨을 다해 지켰다.
그는 때로는 아버지로, 때로는 스승으로. 때로는 친구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훌륭한 군주로 키워냈다. 용기 있는 젊은이로 성장한 텔레마코스는 어머니를 괴롭히는 구혼자들과도 당당히 맞선다.
그뿐만이 아니다. 텔레마코스가 여러 곳을 모험하면서 제왕으로서의 덕목도 익히게 했다. 그렇게 성장한 텔레마코스의 모험담은 프랑스 작가 페늘롱에 의해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소설화됐다.
멘토의 이런 역할이 인간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사명이었는지, 그리스신화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한 아테나 여신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위기 때마다 그녀는 수없이 멘토의 모습으로 변신해 텔레마코스를 돕는다. 멘토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승의 대명사로 남은 이유다.
그런데 이런 숭고한 의미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멘토라는 호칭을 마구잡이로 쓰고 있는 느낌이다. 단순한 조언자의 의미로 평가절하되기까지 했다.
더 심한 경우도 많다. 자칭 멘토라고 부르다가 1~2년 뒤 반대편에 서서 칼을 겨누기도 한다. 배반의 역사로 점철된 정치판에서는 이런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진정한 멘토가 아니다. 섣불리 멘토라는 말을 써선 안 된다. 20년 동안 친구 아들을 돌보며 위대한 제왕으로 키워낸 멘토라는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멘토는 평생을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을 이끈 진정한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