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이지만 1960년대에 살았던 기억 속의 시골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뿌연 회색빛이었다. 그 당시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랬듯이 늘 배가 고팠고, 남루한 옷과 타이어 재질의 고무 신발이 전부였다. 온종일 들판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가 해주신 보리밥이나 밀가루 수제비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그나마도 형제가 많아 실컷 먹기도 어려웠다. 마을은 지저분했고, 비만 오면 동네 길이 진흙투성이로 변했다. 가난을 숙명처럼 달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국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전 국토가 파괴돼 아무것도 없었다. 자원과 기술, 자본을 전적으로 해외 선진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세계 최빈국이었다.1970년 4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 해 대책을 논의하는 장관회의에서 ‘우리 마을을 우리 힘으로 새롭게 바꿔 보자’는 농어촌 새마을운동을 제창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전 국민의 마음속에 ‘모두 함께 잘 살자’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것이다. 마을마다 학교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새마을운동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노래의 가사처럼 초가집을 없애 주택을 개량하고, 마을 길을 넓혔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가난을 물리치고 잘살아 보자고 다짐했고, 농업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40여 년 만에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전 국민적 에너지가 한곳에 모이자 사실상 반만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의 운명과 역사를 우리가 개척할 수 있다고 자부하게 된 것이다.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 민족은 다른 강대국에 의존해야 할 때가 적지 않았다. 운명의 고삐를 우리 스스로 틀어쥐고 나아가지 못하고, 주변국 눈치를 봐야 할 때가 많았다는 얘기다. 그러한 과거의 역사를 새마을운동이 깡그리 뒤집어놓았다. 그런 관점에서 새마을운동은 우리의 문화적, 정신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해준 대국민 운동이라고 확신한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언제 한 번이라도 전 세계를 상대로 호령해본 적이 있었던가.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새마을운동은 나라의 운명을 바꿔놓은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말한 것도 당연하다.새마을운동이 정치적 시빗거리가 돼선 안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새마을운동이 폄훼되거나, 정권의 선전물로 이용된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새마을운동의 가치와 영향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한국적인 문화’를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는 우리가 새마을운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 그런데 최근 정부 내에 새마을운동을 푸대접하는 듯한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내년부터 해외에서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국제개발원조(ODA) 사업을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것도 그렇고, 기존에 해오던 사업에서 ‘새마을’ 명칭을 삭제하기로 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 속에 19일부터 부산 벡스코(BEXCO) 전시장에서 열리는 ‘2017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다시 뛰는 새마을운동, 도약하는 대한민국’이란 대회 주제는 마치 새마을운동이 결코 퇴색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의 역사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같은 장소에선 지구촌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새마을운동글로벌리그’의 41개 회원국 대표들도 자리를 함께했다.이제 우리는 근대화와 경제 성장을 위해 흘러온 새마을지도자들의 땀방울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지금도 ‘나라 품격 높이기 운동’, ‘다문화 가정 및 어려운 이웃 돕기’, ‘내 고향 환경 가꾸기’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누가 알아주거나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 데 지역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봉사하는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위대한 영웅’이다. ‘2017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는 바로 그러한 사실을 재확인하고 재평가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