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에 힘입어 등장한 문재인 정부 임기도 1년을 채 남기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 특히 기후위기로 대변되는 생명의 위기, 불평등의 심화로 대변되는 인류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문명의 위기, 분단된 한반도 차원에서 상시적 전쟁 위협 노출이라는 삼중의 복합 위기를 극복하는 데 소중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출범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다. 특히 남북관계는 2018년 세 차례 정상회담과 합의에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 시기 우리는 문재인 정부 4년 특히 2018년 이후 한국 사회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남북관계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한 요소들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통해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2년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는 이렇게 얻어진 교훈을 바탕으로 어떻게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나아갈 것인지를 놓고 제반 정치 세력들이 경쟁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남북관계는 한국 사회 말고도 이북이라는 상대방의 존재, 초강력 패권 국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일본, 러시아, 유럽연합 등 다양한 국제적 행위자가 존재하는 만큼 그 해법의 방정식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정식이 아무리 고차방정식이라 하더라도 외부 행위자들에 대한 예측은 예측대로 하고, 경우의 수에 따른 대응은 대응대로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보다 핵심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안은 우리 한국 사회가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위해 준비해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현 정부는 물론이고 과거의 정부들도 의제로 올려놓지 않았고, 회피하거나 미래의 일로 간주했다. 그 사이 합리적 논의는 실종되고, 공동체는 분열됐다.
남북이 합의한 상호관계의 최종 목표는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하지만 현시기는 특수하게 형성된 잠정적 관계로서 평화적 공존과 공동 번영의 추구’가 지향점이다. 평화적 공존을 위해서는 상대를 적대시하는 정책과 수단을 제거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북 적대시 정책의 핵심은 ‘국가보안법과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이다. 이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의 폐해는 익히 잘 알려졌고, 현 정부하에서도 고무·찬양 등을 이유로 피해자는 양산되고 있다.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간주하는 ‘헌법 제3조’는 이북을 한국이 장차 수복해야 할 지역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평화적 공존과 양립 불가능하다.
다음으로는 이북으로부터의 전쟁 위협이 해소된다면 이를 전제로 성립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유엔사령부의 역할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체제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자기 무장 또는 방어력을 스스로 해제할 단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북의 한국 사회에 대한 위협이 해소되는 수준에 상응한 한미동맹, 주한미군과 유엔사령부의 위상 및 역할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평화적 공존은 가능하다.
남북이 대치하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보여주는 군사력 증강과 대치는 우려스럽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 속에서도 역내 군비 증대를 핑계로 대한민국마저 이에 편승하는 것은 고통을 호소하는 민중들의 삶을 외면하는 반동적 행태이다.
남북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서도, 동북아시아에서의 평화 증진을 위해서도 인류의 보편적 규범에 입각한 남과 북,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이 함께하는 군비통제와 ‘다자간 안보협력’은 불가피하다.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우리부터 평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