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은 미국의 경제학자로, 미래를 예측하는 일련의 저서로 유명하다. 그가 2000년 내놓은 《소유의 종말》은 원제가 《The Age of Access(접속의 시대)》다.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 ‘접속’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고, 실생활에도 활용하는 시대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책의 처음에서 끝을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말 번역 제목은 원제목과는 달리 유추라는 번거로움 없이도 그대로 전달된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접속은 모바일 접속으로 진화했다. 스마트폰이라는 최첨단 문명의 이기를 통해서다. 모바일 접속은 인터넷과 비교해 시공의 제약이 덜하다. 여기에 스마트폰 보급률 93.1%(방송통신위원회 올해 2월 발표)를 감안하면 한국인은 모두 ‘모바일 접속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나 가능한 모바일 접속은 사회적관계망(SNS)와 유튜브가 한국에서 활짝 피어나는 토양이 됐다. 접속자 모두는 SNS와 유튜브에서 1인 미디어다. 미디어 개수가 5천만 개나 되는 시대인 셈이다.
1인 미디어의 위력은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에서도 여지없이 위력을 발휘해왔다. 실체적 진실을 찾는다면서 팩트는 뒷받침하지 못하는 ‘방구석 코난’,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숫자를 늘려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사이버 레커’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독자들의 ‘확증 편향’, 추측에 불과한 다양한 음모론 등은 바짝 메마른 건기에 번지는 산불처럼 급속하게 세력을 넓혔다.
수요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현상들이다. 구독하는 사람이 있고, 구독을 댓가로 돈을 지불하는 광고주가 있으니 공급자가 생기는 거다. 혼선을 막는다며 일정 단계 수사 이후로 결과 발표를 미뤄온 당국의 신중함도 음모론이 스멀스멀 세력을 넓혀간 바탕이 됐다.
음모론은 언젠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감정 소모가 이어지고, 허탈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확증편향은 맹신으로 번지고, 맹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수사 결과는 불신의 자양분이 될 게 뻔하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은 악화되고, 신뢰 기반은 훼손될 것이다.
1인 미디어의 급부상은 기존 매스 미디어에 대한 반작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시(社是)와 정치 성향을 고집하고, 기성세대 위주로 지면을 만들고, 쌍방향 소통에 소홀한 결과는 아닌지. 1인 미디어에는 간과되는 것이 있다. 취재기자, 팀장, 부서 기사를 책임지는 부장, 보도기사 전체를 재점검하는 국장단 등이 발휘하는 매스 미디어의 집단지성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집단지성의 요체는 ‘견제와 균형’이다.
1인 미디어는 그 특성 탓에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콘텐츠 소비자가 그 역할을 떠안아야 한다. 균형 잡힌, 팩트에 기반한, 자극적이지 않은 것들을 골라 소비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하면 내 의사와 관계없이, 기존의 검색보다 더 자극적인 내용을 띄우는 ‘유튜브 알고리즘’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콘텐츠 소비자 주권도 자연스레 확립할 수 있다.
‘미디어 5천만개’는 1인 미디어의 콘텐츠를 불특정 다수에게 여과 없이 전하는 상황에 다름 아니다. 매스 미디어의 ‘견제와 균형’이란 기능을 소비자에게 강요한다.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경계하고, 회피해야 하는 당위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다. 옳던 그르던, 팩트던 아니던 1인 미디어 주체도 불특정 다수에게 콘텐츠를 전한 이상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 확증편향을 자양분 삼아 구독수를 늘리고, 수익을 얻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콘텐츠를 생산하는 1인 미디어는 인류가 처음 맞닥뜨리는 현상이다. 새로운 미디어를 어떻게 선하게 사용할지에 대해 콘텐츠 제작자와 소비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귀결은 분명하다. ‘뉴미디어의 퇴보’와 ‘법적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