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이 시작된 지 50년 세월이 흘렀다. 어렸을 적 가난한 바닷가 마을에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듣고 자라서인지 가끔 입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가 있다. 커가면서 박정희 정권의 통치 전략들과 관련해 새마을운동이 가지는 의미와 효과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오랫동안 새마을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기도 했다. 특히 지방의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자주 접해야 하는 새마을운동 관련 단체들을 볼 때마다 묘한 이중적 감정이 들곤 했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고 더욱 근대화된 농어산촌을 만들어왔던 긴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기에 새마을운동의 긍정적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반면 새마을운동이 박정희 체제의 대국민 선전과 동원 전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마음을 열고 좋은 시선으로만 평가할 수 없었으니 이중적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새마을운동중앙회가 주도하는 생명살림운동 소식이나 새마을운동의 전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듣게 되면서 나의 태도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50년 전 새마을운동이 농어산촌을 근대의 시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했다면, 이제 새마을운동은 전혀 다른 시대적 변화와 요구 앞에 서 있다. 산업화, 도시화, 기술강국, 정보화와 IT 선도국 등 끊임없는 자본주의 국가 개발 프로젝트에 몰입해 오면서 파생된 사회문제들이 축적되어 있다. 경제, 정치,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극심한 사회적 대립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개발 신화의 뒷면에는 인권 탄압, 민주주의의 위기, 자연과 생태 파괴, 물신주의, 생명 경시, 쓰레기와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그림자들이 더욱 진해지고 두꺼워지고 있다. 정신없이 달려온 개발과 성장의 시간 속에서 파괴와 파멸의 위험이 함께 자라났다. 그래서 ‘생명·평화·공경’의 기치를 내걸고 공동체의 붕괴를 막고자 하는 새로운 새마을운동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참으로 반갑다. 나는 자연과 인간, 생명과 평화, 사람 사이의 존중과 공경의 가치가 지금 이 시대의 긴박한 호소이자 요구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살기 위해 억누르고 파괴해 버린 것들이 인간을 향해 역습을 해오는 지금, 우리는 변해야 한다. 자연과 사람 더 나아가 지구를 살리는 데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야 하고, 생명의 순환을 촉진하는 것들을 심어야 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들을 줄여나가야 한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중앙회가 선도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건설하고(1건), 나무와 정화식물을 심고(2식), 화석에너지·비닐과 플라스틱·육고기를 줄여나가는(3감) 생명살림운동은 죽어가는 지구와 파멸할 수도 있는 인간을 살려내자는 선언이자 실천이다. 나는 생명살림운동에 대해 듣고 보면서 ‘지구법학’의 이념을 떠올린다. 20세기 동안 석유화학산업에 기반을 둔 산업문명이 인간의 존재터인 지구를 파괴하고, 결국 인간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은 인간의 공통 과제가 되었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켠 ‘지구법학’은 자본주의 첨단기술문명의 위협을 넘어 생태문명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자연에 법적 권리를 부여함을 통해 인간이 침범하거나 파괴해서는 안 되는 자연의 영역을 구축하자는 법이념을 제안했다. 인간의 법과 거버넌스 체계가 인간 사회뿐 아니라 모든 생명 공동체와 지구 자체의 건강과 통합성에 이바지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전환적 인식은 어찌 보면 지구법학의 이념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아니 오히려 새마을운동이 지구법학과 적극적인 결합을 시도했으면 한다. 생명, 평화, 공경의 가치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뿐만 아니라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사이에 실현됨으로써 사람 사회와 지구 모두가 아름답고 지속 가능한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면 좋겠다. 이 여정에 동참하는 의미로 나는 생명살림운동의 회원이 되었고, 새마을운동의 새로운 미래를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