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깊은 가을 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억하는 이, 적잖으리라. 배우 이병헌의 하드보일드 액션이 돋보인 영화 ‘달콤한 인생’(2005)의 엔딩 장면에 나온 내레이션. 개봉한 지 10년도 더 된 이 영화가 여태 뇌리에 박혀 있는 건 영화 내용이 아니라 바로 이 선문답(禪問答) 때문이다. 인생이 달콤하길 꿈꾸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누구나 행복을 바란다. 무릇 개인의 삶이란 어느 누구의 그것과도 단순 비교하기 힘든,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기에 특정인의 삶에 대한 행복 여부를 섣불리 재단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행복과 불행은 사회적 개념이기도 하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달콤한 꿈’은커녕 ‘달달한 꿈’마저 위협받는 불행한 사회나 다름없다.‘흙수저’, ‘금수저’로 대변되는 이른바 ‘수저 계급론’은 이미 국민 대다수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했다. 개개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직업과 경제력, 물려받은 부(富)에 따라 2세의 사회계급이 결정된다는 이 자조적 표현은 ‘개천에서 용(龍) 나는 시대’의 종언을 일러준다. 과거에나 현재나 미래에도 인간사에서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은 존재했고, 존재하며,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 격차를 넘어설 ‘사회이동’(개인이나 집단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옮겨가는 것)의 가능성이 희박할 만큼 고착화된 계급구조 탓에 이 땅의 청춘들은 알알이 여물어갈 꿈마저 놓아버린다. 분투노력이 아닌 자포자기의 길로 접어들게 하는 것이다.130년 된 대학의 학칙까지 변경케 한 부정입학․학사관리 특혜 논란에 휩싸인 이화여대 승마특기생이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글 내용은 이런 현실의 정점이다. “돈도 실력…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가히 ‘황금수저’라 할 만하다.이러니 그 누가 각자의 ‘꿈’과 ‘끼’를 발산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누가 그 말을 믿을까. 금수저를 입에 물리지 못한 채 낳은 ‘N포 세대’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가슴은 그저 아릴뿐이다. 약자에 대한 소위 ‘갑(甲)질’은 또 어떤가. 대기업과 독과점 기업, 대형 유통사, 원청업체 등 기존 기득권층의 갑질은 물론, 건물주에 의해 자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 등이 쫓겨나는 현상)까지 우리 사회의 을(乙)에 대한 횡포는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올해 2월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 등 국내 대표적 정치·사회학자 5명은 대통령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의뢰로 전국 성인 남녀 105명을 심층 인터뷰해 작성한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 진단’ 연구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이 ‘분노사회’를 넘어 ‘원한사회’가 돼간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경제력 차이로 인한 위화감과 불만이 극에 달한 한국사회의 갈등 양상이 사회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게 핵심 요지다.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수많은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며 상생(相生)을 외면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그만큼 공고함을 방증하는 셈이다.10월 18~21일 강원 평창에서 40개국 새마을운동 관계자 7백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2016 지구촌새마을지도자대회’에선 각국 새마을운동조직 간 네트워크인 ‘새마을운동글로벌리그’(SGL)가 창립됐다. ‘새마을운동-희망의 물결, 하나 되는 지구촌 사회’라는 주제에 걸맞게, SGL이 지구촌 사람 모두가 ‘이뤄질 수 없는 달콤한 꿈’ 대신 ‘달달한 인생’이나마 더불어 누리게 해주는 ‘우리들의 리그’이길 바란다. 노력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곳, 그게 곧 ‘희망의 지구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