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피해가 전방위적으로 번지고 있다.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사망자 숫자도 하루하루 늘어간다. 국회도 본회의 일정을 전면 취소하는 등 사흘간 자체 폐쇄 조치를 내렸다. 1958년과 1980년에 폐쇄된 적은 있지만, 직원 등의 출입까지도 막는 전면 폐쇄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국회 건물에 대한 방역도 이뤄졌다. 법원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재판 2주 중단’이라는 처방을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확산일로다. 중국 부품을 들여와 완성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사태 초기부터 공장을 일부만 돌리거나 아예 중단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공장도 가동을 멈추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처했다. 확진자와 접촉했거나 대구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의 출입을 통제한 데 따른 여파다.나라 밖에서 입는 피해도 생겨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한국인 성지 순례 관광객을 되돌려 보냈다. 한국인을 입국금지 제한자 리스트에 올리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을 꺼린다는 의미의 ‘코리아포비아’라는 합성어까지 등장할 정도다.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전염병은 잡히기 마련임을…. 인간이 지구 상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코로나19도 머지않은 장래에 2002년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2012년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처럼 기억과 역사 속의 사건에 그칠 것이다. 다만 전염병은 빠른 감염으로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두려움의 총량을 키운다는 점이 문제다. 그렇다면 확산되는 이때에 어떻게 잘 대처해 피해를 줄이느냐가 관건이 될 뿐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19 이후다. 우리가 모두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고, 피해를 타산지석 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전염병, 그것도 빠른 속도로 번지는 전염병의 감염은 선택적이지 않고 무차별적이다. 국회, 법원, 군대 등 어느 하나도 예외는 없다. 모두는 잠재적 감염 대상이다. 누구 하나만 잘한다고 방역이 되지 않는다. 내가 감염되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전파자가 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 전체의 노력이 방역의 전제가 된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그 끝은 공멸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두 함께 할 것이라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나도 노력한다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로나19는 각자 도생이 아니라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책임을 체험적으로 일깨워 주는 사건이다.우한 교민 격리시설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수용하겠다는 결정이 뒤따랐다는 점이다. 철저한 관리로 감염을 막겠다는, 격리시설 결정은 불가피했다는 정부 설명을 주민들이 믿었기에 가능했다.코로나19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역할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대처법을 빠른 속도로 유포하면서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바르게 기침하기 등을 일상 속에 빠르게 자리 잡게 했다. 감염 위험이 큰 악수를 주먹 맞대기로 교체한 것도 SNS가 퍼뜨린 ‘코로나19 예절’이다. 코로나19를 중앙집중식 국가 감시망만으로 방역하기란 역부족이다. 중앙 정부는 물론 전문가, 민간 의료기관,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이 유기적으로 함께 움직여야 한다. 유기적 공동 대응의 근간은 신뢰다. 각각의 주체들이 역할과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한다고 믿어야 가능하다.코로나19는 2020년 한국에 닥친 엄정한 위기다. 하지만 신뢰를 확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일 수도 있다. 원칙, 배려, 적정성을 바탕으로 탄탄한 신뢰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확인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야 지속 가능한 발전도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