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 바야흐로 꽃의 계절.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따사로운 봄볕을 채 느끼기도 전, 매캐한 공기가 코와 입, 살갗으로 먼저 와 닿는다. 하늘을 온통 뿌옇게 가리는 ‘미세먼지 지옥’은 가히 ‘마스크 극성수기’를 부른다. ‘매우 나쁨’…‘나쁨’…. 3월 24일부터 나흘 연속 발령된 초미세먼지(PM2.5) 주의보에 필자 역시 전례 없는 무더기 마스크 구매 행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상춘(賞春)은커녕 ‘최악의 미세먼지’ 공습부터 피하고 봐야 하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러한 아이러니는 이제 무감(無感) 하리만치 매우 흔한 우리 일상의 풍경 중 하나가 됐는지도 모른다.주지하듯, 오늘은 제73회 식목일(植木日).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국민식수(植樹)에 의한 애림(愛林)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해 제정된 날’이다. 전국 각지에서 기념 식목행사가 잇따랐음은 물론이다. 미세먼지가 창궐하는 이즈음 대대적인 나무 심기가 이뤄지는 건 반갑고도 절실한 일이다. 3월 23일 유한킴벌리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를 방증한다. ‘2018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신혼부부 나무 심기에 참가 신청을 한 신혼부부 3천6백36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조사대상자의 80%가 가장 해결이 시급한 환경문제로 미세먼지를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를 줄일 효과적 방책 중 하나가 나무 심기다. 실제로 나무 한 그루가 1년간 흡수하는 미세먼지의 양은 에스프레소 1잔 분량에 이른다. 1984년부터 지속해온 유한킴벌리의 행사 또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나무 심기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그럼에도, 해마다 지방자치단체들과 학계 전문가, 산림청 간에 식목일을 3월 중으로 앞당겨 재제정해야 한다는 논란이 되풀이되는 건 아쉽기 그지없다. 논란의 핵심은 매년 4월 5일로 정해진 식목일이 과연 나무 심기에 적합한 날이냐는 것. 실제로 제주도는 물론이고, 일명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시를 비롯한 수많은 지자체의 식목행사는 식목일보다 한 달가량 앞선 3월 중순에 열리고 있다. 지난해 경우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식목일에 나무 심기 행사를 진행한 곳은 전체의 35%에 불과하다.재제정 주장의 논거는 1946년 식목일이 처음 제정된 이후 72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구온난화 때문에 제정 당시의 식목일 평균기온이 이젠 3월 중순으로 앞당겨졌으며, 현재대로 4월 5일에 식목행사를 하면 이미 싹이 튼 나무를 심어야 하는 데다 뿌리 생육에 지장을 줘 자칫 나무가 고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식목일을 주관하는 산림청의 입장은 다르다. 신라가 677년 삼국통일을 완수한 날(문무왕 17년 2월 25일)과 1493년 조선 성종이 재위 24년 3월 10일 선농단에서 하늘에 친히 제사를 지내고 밭을 간 날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공히 4월 5일에 해당해 역사적 의미가 크다는 것. 이와 더불어 남북통일시대를 고려할 때 식목일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식목일 변경안은 이미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도 국무회의에서 논의됐지만, 현행 유지로 결론난 바 있다. 당시 식목일의 상징성과 앞으로 통일까지 고려해 현행대로 유지하되 기온변화와 지역별 특성에 맞게 식목일 기념 식재기간은 탄력적으로 운영키로 한 것이다.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식목일이 상징적 기념일이면 좀 어떠랴. 정녕 중요한 건 적지적수(適地適樹·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음)한 뒤 살뜰히 가꿔 생명의 숲을 일구는 실천 그 자체 아니겠는가. 매년 3~4월이 산불피해가 집중되는 시기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식목(植木)에 대한 식목(拭目·눈을 씻고 자세히 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식목일을 맞아 문득 스치는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