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에 주고받는 덕담은 미풍양속이다. 요즘은 대개 휴대전화로 기해년(己亥年) 돼지해를 맞아 비슷한 내용의 문구와 부적을 주고받는다. “대박 나세요! 부자되세요!...” 돼지도 보통 돼지가 아니다. 온통 부를 상징하는 황금 돼지 그림 일색이다. 그것도 수십 마리씩.경제적 풍요에 대한 기원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내놓고 말하는 경향은 근자에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주로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는 인사가 주를 이뤘고, 경제적 안정 문제는 속내는 다르더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성장은 정체되고, 실업률은 높아지고,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는 세태와 불안 심리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명절 연휴와 휴가철마다 인천공항은 해외로 나가는 인파로 북새통에 만원이라는 뉴스도 단골로 등장한다. 이북에서는 ‘기와집, 이밥에 고깃국’을 이야기했다지만, 우리는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더는 대박의 꿈과 부자를 향한 염원을 멈출 수 있을까?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가, 못 살고 있는가? 내 삶이 평균보다 이상이면 문제가 없고, 평균보다 낮으면 문제인가? 평균의 삶은 무엇으로 측정하는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내 삶도 풍요롭고 행복해지는가? 가히 온 세계가 GDP(Gross Domestic Pro duct,국내총생산) 성장 집착과 중독증에 걸려 있다. 정부, 대기업, 금융시장 모두 예외가 없다.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해 앞으로 나아가면 사회는 더 행복해진다는 믿음이 전 인류를 사로잡고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주류 경제학은 이 믿음을 재생산하는 강력한 도구이자 체계이다.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성장과 개발의 외길을 달려왔지만 2008년 금융위기에서 보이듯이 경제적 불안정과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 2015년 현재 전 세계 부자의 상위 1%는 나머지 99%의 부를 모두 합친 것 보다 더 많이 가졌다. 인간 활동은 지구의 생명유지체계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압박을 주고 있다. 미증유의 혹서와 혹한이 더 자주, 더 길게, 더 세게 찾아오고, 홍수와 가뭄, 태풍과 해수면 상승, 농지의 황폐화와 물 부족이 일상화되고 있다. 어장의 오염과 훼손은 2050년이면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누구를 위한 성장이고, 성장의 비용은 누가 치르며, 그 성장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 ‘경제학(Economics)’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크세노폰이다. 가정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와 지배 혹은 규범을 뜻하는 ‘노모스nomos’를 결합해 ‘살림살이 관리’라는 말을 만들었다. 이제는 위기에 처한 지구의 살림살이를 이끌 새로운 대안 경제학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인류가 지구에 가한 손상을 깊이 자각한 최초의 세대이자 성장과 행복을 재정의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명이 다한 낡은 것은 맹신할 것이 아니라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간디가 그랬던가? 세상을 바꾸려면 내 생각부터 바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