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 후반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보된 주말 아침. 코믹 재난 영화라는 정보만으로 티켓팅한 ‘엑시트’. 휴일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관객에 다소 놀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소소한 재미와 감동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루함은 저만큼 멀어지고, 몰입도는 높아졌다. 청년 백수 신세라 조카와 조카 친구들에게도 눈총받는 취업준비생 용남(조정석), 용남이가 대학 시절 마음에 뒀던 후배인데 모친 칠순잔치 연회장의 부점장으로 재회한 의주(임윤아). 이들 둘이 유독가스가 퍼져 나가는 도시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제법 재미있네”라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7월 31일 개봉 이래 20일 만인 8월 19일 현재 누적관객 7백65만7천여명을 기록했다. 1천만 관객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흥행 측면에서 ‘봉오동 전투’를 앞서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중국 지린성 일대에서 한국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에 대승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한·일 경제대전’과 광복절 등과 궤를 같이하는 터라 개봉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엑시트’ 상영 시작 일주일 뒤 스크린에 오른 ‘봉오동 전투’는 누적 관객 숫자가 ‘엑시트’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개봉관은 ‘엑시트’보다 1백17개 많은 1천1백 개인데도 하루 관객 숫자는 적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나 관람객 연령층이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함을 감안하면 ‘엑시트’ 강세는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엑시트’ 흥행몰이에 대해 평론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소재가 신선하고 영화에 담긴 사회적 코드가 시의적절하다. 기존의 재난영화와는 다른 형태다. 웃음으로 긴장을 이완시켜준다. 주인공을 통해 청년 실업 문제를 적절히 짚었다. 액션과 코미디가 배합돼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여주인공이 능동적·적극적 존재로 부각돼 남녀가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구조로 그려졌다.관람객 입장에서 재미를 느낀 부분도 평론가들의 시각과 상당 부분 겹친다. 스토리 전개가 꼬이지 않아 시원했다. 맞닥뜨린 어려움을 하나하나 헤쳐나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연회장 하늘 정원의 점장을 제외하면 악한 사람들은 없었다. 번번이 낙방하는 취업준비생과 사회 초년병의 분투기가 흥미로웠다.영화는 관람객의 감성 코드를 제대로 자극할 때 흥행에 성공한다. 감성 코드를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관람객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영웅이나 의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주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스토리를 풀어나간 영화, 착하고 선한 영화, 자기희생을 거룩함보다는 일상의 행동으로 제시한 영화. 이런 요소들이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의 감성 코드를 자극하고 감정이입을 끌어낸 것은 아닐까. 결국 ‘엑시트’ 흥행몰이에서 진하게 묻어나는 메시지는 ‘일상과 보편과 평범은 위대하다’로 요약된다.정치와 경제와 사회는 상호 연계적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동시대인들의 감성 코드는 변화를 촉발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변화의 방향은 진화와 퇴보는 물론 정체로도 나타난다. 어떤 방향으로 결정될 것인지는 동시대인의 감성코드와 감정이입을 얼마나 지혜롭게 모아 가느냐에 달렸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경제적·외교적·사회적 여건은 심상치 않다. 일본의 무역보복,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미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복잡한 셈법, 미·중 무역 전쟁에서 불거진 각종 리스크 등은 진화와 퇴보를 가르기에 충분한 변수들이다. 내년 총선 등 국내의 정치 일정은 변수의 가짓수를 더욱 늘리는 요인이다. 변수는 통제 가능한 상수로 만들어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변수를 상수로 만드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을 기반으로 하는 구성원들의 컨센서스다. 나라 안팎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지금, 영화 ‘엑시트’의 흥행 성공은 이런 울림을 전해주는 듯하다. ‘일상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