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은 남북한 간에 1991년 12월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언급되었다.
‘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은 남북의 현격한 경제력 격차를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과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3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물론 향후에도 이 담론을 남북 경제 협력의 최고 목표로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현재 인류는 기후 위기, 인류세, 수축사회, 성장불가능의 시대, 불평등의 심화로 대변되는 전례 없는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 문제는 일국적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한반도에 거주하는 남북의 구성원 모두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위기를 극복할 남과 북, 한반도 차원의 새로운 대안 모색, 즉 대안 경제가 필요하며, 이는 남북 경제 협력 담론의 변화도 요구한다.
‘민족경제균형발전론’은 남북 경제 협력의 지향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제반 여건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 위기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고, 대안 경제의 상을 ‘민족경제’라는 모호한 표현 속에서 은폐하고 있다. 민족 경제의 범위, 균형적 발전의 대상과 영역, 발전 개념의 목표로서의 타당성, 발전과 위기 극복의 양립 가능성 여부 등에서도 논리적으로 비판의 여지가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전개된 남북 간 경제 협력의 내용은 여러 긍정적 측면을 고려해도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하는 차원이 아닌 현재의 위기를 그대로 안고 가거나 확대 재생산하는 차원의 경제 협력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늘날 우리는 발전 개념의 대체 즉 성장과 발전이 경제협력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임을 최우선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위해 구성원 모두의 삶의 방식과 남북의 산업구조를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넘어 생명과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사회로서 ‘한반도 생명평화공동체’를 구현할 새로운 경제인 ‘생명평화경제’가 필요하다. ‘생명평화경제’는 살림의 경제, 평화의 경제이다. 자원 약탈형, 생태계 파괴형, 성장과 개발, 시장과 자본에 대한 맹신에서 탈피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며, 뭇 생명 및 미래세대와의 공존, 협동, 호혜 속에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생명의 경제이다. 어떤 군사적 행동이나 전쟁에도 반대하고, 군사비를 감축하고, 전쟁 물자를 수출하거나 수입하지 않으며, 군수산업을 민수산업으로 전환하고, 공동체 중심의 윤리적 투자 속에 공유재를 확대하며, 모든 불평등을 해소하는 평화의 경제이다.
‘민족경제균형발전론’은 ‘생명평화경제론’으로 확장·대체되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생명평화경제’를 구현할 수 있는 유력한 방도인 남북 경제 협력은 그 목표와 내용, 실천 방안 역시 새롭게 재규정되어야 한다.
남과 북은 우선으로 ‘생명평화경제’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둘째, 탈 광물, 탈 화석연료 산업구조로의 전환 협력, 셋째, 탄소 절감, 신재생에너지 사업 협력, 넷째, 모든 농업을 유기 순환 농업으로 전환하는 협력, 다섯째,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 공동체 중심의 금융 운용 참여 협력, 여섯째, 호혜적인 개발 협력, 일곱째, 접경지역의 생태계 보전, 호시무역, 탐방 및 인적교류 협력, 여덟째, 국제사회 제재 해소를 위한 연대 및 남북의 독자적 경제협력 공간 확보 노력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평화경제’로의 전환, ‘한반도 생명평화공동체’의 구현은 산업구조의 전환과 더불어 남과 북 구성원 모두에게 적은 빵을 민주적으로 공평하게 나누며, 호혜와 상호부조, 자발적 청빈의 삶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