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하늘, 물, 지구의 구석구석에 사람들이 쓰다 버린 물질들이 쌓이고 있다. 그 종류가 다양하고 양도 엄청나지만, 동시에 썩지 않은 채 오랜 세월 지층 등에 남아 있다. 이렇게 해서 지구의 지질층 자체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빙하기 이후 지난 1만2천년 동안 형성되었던 지질층(홀로세)이 언젠가 부터 사람들의 생존과정에서 생성된 각종 물질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한다. 이 새 지질의 연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 부른다. 빠른 속도로 지구를 뒤덮은 물질이 있다. 플라스틱이 그러하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1950년 이래 2015년까지 생산된 플라스틱 누적량은 89억톤에 이른다. 이는 코끼리 10억 마리,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2만5천 개 무게와 맞먹는 양이다. 또한 아르헨티나 국토 전체를 덮고도 남을 양이다. 이를 플라스틱 랩으로 만들면 지구전체를 감쌀 수 있는 양이기도 하다. 2015년 기준으로 사용이 끝난 플라스틱은 총 63억톤에 이르는 데, 이 가운데 9%가 재활용되고 12%가 소각되며, 나머지 79%(55억톤)는 땅이나 바다에 쌓인다. 지금까지 생산된 플라스틱 중 절반이 지난 13년 동안 생산된 것이다. 현재 연간 생산량 3억톤은 지구상 인류의 전체 무게와 비슷한 양이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다른 인공 재료를 대부분 앞질러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 증가세가 앞으로 더 가파를 전망이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늘면 2050년에 플라스틱 누적 생산량은 3백40억 톤에 달해 지구 전체가 플라스틱으로 뒤덮게 된다. 지구는 플라스틱 행성이 되는 것이다. 생산된 플라스틱은 수백년, 수천년간 사라지 않은 채, 자연환경을 영구적으로 오염시켜 기후변화에 버금가는 환경위기를 불러온다. 플라스틱은 오랜 세월에 거쳐 분해되지만 그 과정에서 마모에 의해 작은 알갱이로 바뀌어 지구 생태계 전역으로 확산된다. 5mm 미만의 작은 플라스틱을 미세 플라스틱으로 불린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플라스틱 제품이 부서지면서 생성된 것도 있다. 치약, 세정제, 스크럽 등 많은 일상용품에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다. 1백50ml 제품에 약 2백80만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담겨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너무 작아 하수처리시설에 걸러지지 않고 강과 바다로 흘러든다. 한 연구논문에 의하면 2015년 한 해 동안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 쓰레기는 약 4백80만-1천2백70만톤이었다. 버려진 플라스틱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한다. 이렇게 해서 바다엔 엄청난 양의 미세 플라스틱이 부유하거나 침전되어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음용수 등에 직접 흘러들기도 하지만, 먹이활동을 통해 물고기가 섭취하면 먹이사슬을 통해 사람의 몸 속으로까지 들어온다. 북부 대서양 물고기를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73%의 물고기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돼 바 있다. 플라스틱은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나일론 등이 포함된 석유화학물이기 때문에 오염물질과 만나 새로운 환경문제를 야기하며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이다. 미세플라스틱은 장폐색을 유발하고 에너지 할당을 감소시키며 성장을 저해하는 등 악영향을 끼친다. 플라스틱에서 나온 환경호르몬은 내분비계를 교란시켜 생명의 단축을 초래한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98.2kg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지구를 플라스틱 행성으로 만드는 데 우리는 어느 나라 보다 많이 보태고 있는 셈이다. 플라스틱 재활용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두 번째다. 하지만 재활용만으로 지구가 플라스틱 행성으로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플라스틱 행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크게 두 가지다.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를 전면 중단하든지, 아니면 분해가 쉽게 되고 생명체에 무해한 신물질의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카드도 냉큼 쓸 수 없다는 데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