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걱정으로 끝나길 바랐건만….’ 4월 첫 번째 금요일 밤. 한 뉴스전문 TV채널이 숨 가쁘게 전하는 강원 영동지역 산불 현장은 ‘우려가 여지없이 현실로 확인되는’ 장면이었다. 겨울 가뭄이 심하면 봄철 산불에 각별히 주의해야 함을 이 지면을 통해 경계했던 터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은 아닌지, 자책감마저 드는 순간이었다.이번 산불이 큰 피해를 남긴 것은 강풍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불이 시작될 무렵 기상청 미시령 자동 관측 장비에 기록된 바람의 순간 초속은 35.6m. 이 정도 빠르기는 중형 태풍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 바람을 타고 불씨는 빠르게 번져 나갔다. 강원도의 집계에 따르면 축구장 2천4백개가 넘은 1천7백57ha의 산림이 불길에 휩쓸렸다.산불이 태운 것은 산림만은 아니다.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강릉 동해 속초 고성 등 4개 시군과 인제지역에서는 주택 5백동, 창고 2백70동, 축사 1백18동, 근린시설 96동, 기타시설 2백59동 등 1천2백50동이 피해를 입었다.간접 피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산불 다음날은 봄철 나들이 시즌이 시작되는 4월 첫 주말이었다. 토요일 아침 강원 영서지역에 있는 고향집에 다녀오려고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올랐다. 평소 주말이면 차량으로 가다 서기를 반복했을 서종나들목~가평휴게소 구간이 시원하게 뚫렸다. ‘다니는 차들이 왜 이렇게 없을까’하는 궁금증은 잠깐 들른 국도변 휴게소의 식당에서 풀렸다.“강원도 동해안 일대 숙박시설과 식당에 잡혔던 주말 예약이 산불로 모두 취소됐답니다. 올봄에는 주말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식당 주인의 말을 듣고 산불지역이 동해안 관광지와 겹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2차 피해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산불이 급속하게 옮겨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다. 산불 피해지역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직 생활을 하는 고교 동창이 전해준 분석은 씁쓰레하다. ‘엄청난 피해를 당하면서 얻은 학습 효과’라는 것이다. “산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몸소 체험하고 많이 전해 들었기 때문에 가재도구나 집칸을 지키려고 대피 시간을 놓치는 주민들은 없었다”고 했다. 강원 영동지역에서는 1996년과 2005년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산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5년 산불은 양양의 천년고찰 낙산사까지 불태웠다.어려울 때 뭉쳐서 서로 돕는 미풍양속은 이번에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재민을 돕는 온정의 손길이 끊이지 않고 있음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징표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성금과 물품 지원을 요청하고 약속하는 글들이 빠르게 확산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세계 최고 IT 강국임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자연은 한번 파괴되면 치유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린다. 산불이 남긴 생채기가 모두 사라지고, 이전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갖가지 대책을 동원해도 30년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산불이 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피해지역에서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산불로 살아 있는 나무가 없어진 경사 심한 산간 지역은 지표면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많은 비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산사태를 막으려면 장마철 이전에 관련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산불 피해를 이익으로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의 산림은 녹화에만 초점을 맞춰 조성된 곳이 적지 않다 보니 경제성이 떨어지는 잡목들로 우거졌던 것도 사실이다.범정부차원에서 복구 및 2차 피해 예방 작업과 아울러 관광인프라 구축이나 고부가가치 조림 등도 고민해야 한다.검게 그을린 산불 피해지역도 머지않아 다시 초록으로 물들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할 숙제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원래보다 나은 산림으로 복구시켜야 하고,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