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일분일초를 쪼개 계획적으로 쓰는 사람과 하루를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는 사람, 목표 달성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과 소일 꺼리나 찾아 다니는 사람에게 하루가 같은 길이는 아니지 싶다. 유아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에도 모두 제각각의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듯하다. 나이에 시속을 나타내는 ㎞/h를 붙이면 그 나이의 사람들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된다는 우스갯소리는 매우 그럴듯하다.흐르는 시간은 기해년 황금 돼지의 해를 여지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 넣고, 경자년 흰쥐의 해를 무대에 등장시켰다. 시간은 어느 한때도 끊긴 적이 없다. 몇 년도니, 무슨 해니 해서 단락을 짓는 것은 인간의 편리 때문이리라. 다른 한편으로 앞 단락을 되돌아보고, 뒤 단락을 잘 채우고자 하는 삶의 지혜로움일 수도 있겠다.해마다 12월쯤이면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언론에 등장한다. 대학교수들은 ‘2019년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이 새는 많은 불교경전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 두 개의 머리가 한 개의 몸을 공유한다고 한다. 머리 하나는 낮에, 다른 하나는 밤에 각각 깨어나는데, 머리 하나는 늘 몸에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지만 다른 하나는 이를 질투해 독이 든 열매를 먹어 몸통이 죽고,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었다. 하나가 잘못되면 다른 하나도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 운명공동체가 공명조인 셈이다. “서로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함께 죽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자성어 선정에 녹아 있다”는 것이 사자성어 설문 조사에 참여한 한 교수의 설명이다. 공명지조에 이어 교수들의 선택을 많이 받은 사자성어는 어목혼주(魚目混珠, 물고기 눈과 진주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 반근착절(盤根錯節, 뿌리가 많이 내리고 마디가 엉켜 있다) 지난이행(知難而行,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한다)의 순이었다.올해 선정된 사자성어를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대한민국의 2019년이 어떠했는지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서울지역 촛불시위 성지를 두 개로 나눴다. 임명 철회를 외치는 광화문 광장과 조 전 장관의 검찰개혁 주도를 요구하는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으로 말이다. 보수와 진보는 그렇게 두 곳에서 서로서로 세 과시 경쟁을 벌였다. 공정이라는 주장과 불공정이라는 반박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대립했다. 지리적 공간에서, 이념의 장에서, 온라인과 모바일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맞붙었다.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론과 현실을 부정하는 소리라는 비판은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 외교 정책과 경제 정책에서 부딪히며 파열음을 토해냈다.한 해를 보내고 다음 해를 맞는다는 것은 흥분과 기대다. 폴란드의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44통의 편지 형태로 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책의 한 챕터인 ‘편지 26 : 새해의 소망’에서 새해의 의미를 이렇게 갈파했다. “새해맞이는 과거를 완전히 보내버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래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다. 새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희망을 기념하는 것이다. 새해란 희망들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열리는 축제다.”새해는 올해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면 얼마나 우울한가. 올해의 사자성이인 공명지조를 새해의 지혜로 삼으면 어떤가. 두 머리가 엇나가지 않게, 한 머리가 몸에 치명적인 행동을 못하게 하면 된다. 운명공동체로서 인식을 공유하고, 한 머리에 부족한 부분을 다른 머리가 보완해 상생하도록 하면 된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소통하고 화합도록 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살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광복 이후의 대립과 갈등을 70여 년이 지난 지금 반복하는 선조에 대해 후대는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