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모든 것은 녹아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마르크스 엥겔스가 걸림돌이 사라져 자본순환이 가속화되는 근대 시장경제의 특징을 지칭했던 말이다. 지리학자 하비는 이를 ‘시간과 공간의 압착’이라고 말했다. 국경을 넘어서는 경제활동이 빈번해지면서 지구 전체로 통합되는 이른바 지구화는 이 표현에 딱 들어맞는다. 오늘날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변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과 비교하면 속도는 10배 빠르고, 3백배 더 크며, 3천배나 더 강하다. 이로 말미암은 세계경제의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멕킨지앤드컴퍼니의 경제연구조직인 멕킨지글로벌연구소가 지난 25년간 세계 경제를 추적한 끝에 2016년 내놓은 ‘미래의 속도’란 책은 바로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의 원제목은 ‘예사롭지 않은 혼란(No Ordinary Disruption)’이다. 지금 일어나는 변화의 속도가 ‘보통이 아닌’ 단절과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5년간 지속되어 온 ‘대안정기(Great Moderation)’가 끝나면서 파괴적인 4가지 힘이 쓰나미 같이 몰려오고 있다. 경제 중심축이 신흥국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혁신을 가속화하는 기술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지며, 세계인구가 빠르게 고령화되고, 교역 및 자본·사람·정보 흐름의 가속화로 전 세계의 연결성이 강화되고 있다. 미래의 속도는 혁신기술의 수용에 의해 추동된다. 와트의 증기기관이 등장한 1760년대부터 1850년대 이후 산업혁명 기간에는 기계의 힘을 이용해 경제가 근육을 기르는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혁신기술에 의해 신경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이로써 컴퓨터 처리능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현대 기술 변화 예측의 근간이 되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와 함께 더 빠르고 더 강력한 컴퓨터는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물 인터넷의 급속한 성장에서 보듯 사람과 사물이 한몸이 된 기계, 도구, 상품, 이미지, 정보 등이 매우 빠르게 순환하면서 삶의 지형을 급속하게 바꾸어 놓고 있다.미래의 속도는 기존 방식과 틀의 파괴와 불안정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 집단적 직관을 다시 조정하고 고성장 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하며 트랜드 변화에 더욱 기민하게 대처할 때 기회는 나의 편이 된다. 이를 위해선 세계가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의 상당 부분이 잘못됐다는 걸 먼저 깨달아야 한다. 파괴적인 힘과 새로운 트랜드를 읽어 내려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직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직관은 인생의 경험, 지식 그리고 오랫동안 힘들게 체득한 세계에 대한 이해의 능력이다. 직관을 재정립하는 것은 어려우면서 그만큼 절실하다. 속도의 시대, 기존의 직관을 고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실패와 낙오를 의미한다. 리더일수록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자신의 성향이나 편견을 이해하고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읽어내는 새로운 직관을 형성해야 한다. 직관을 바꾸어 위해선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경영할 때, 빌 게이츠가 1년에 1주일이나 2주일 동안 외부와 고립된 오두막에 칩거하면서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에게 있어 성찰의 시간은 시장변동에 대한 예측과 적응, 신제품의 개발, 기술창조 등을 위한 직관의 재정립 시간이었다. 또한 사람-사물이 한몸이 되는 기술의 운용에서 사람의 가치를 다시 중심에 두려는 직관의 확립이기도 했다. 세계적인 기업가인 그가 ‘따뜻한 자본주의’를 설파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직관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