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로 다양화 등 변화 통해 매출 증가 꾀해가업을 잇다약 5년 전, 강일(35) 씨의 부친이 형제들에게 가업을 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3남 1녀 중 셋째의 강 씨의 고민은 며칠 가지 않았다. 다른 형제들이 난색을 보였지만, 학교 다닐 때나 군 생활 할 때도 틈만 나면 집안일을 도왔던 그는 귀어하기로 결심했다. 단지 아버지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일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내의 협조도 얻었다. 전남 영암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퇴사 후 전남 고흥으로 내려갔다. 아버지 밑에서 교육전남 고흥은 통영, 거제 등과 함께 굴 주산지로 유명하다. 고흥에서 생산된 굴은 품질이 우수해 2016년 4월 지리적 표시제 22호로 등록됐다. ‘고흥 굴’ 상표를 달고 전국에 유통되고 있다. 이에 그는 부친이 일궈놓은 굴 사업을 제대로 한 번 키워보자고 다짐했다. 패기가 충만했고 자신만만했지만, 적응기간이 예상외로 길었다. 이전에 가끔 도와주던 때와는 달랐다. 아버지와의 ‘마찰’이 특히 힘들었다. 부친은 매사에 엄격했지만, 그는 말없이 견뎌냈다. 굴을 까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어르신들 대하기도 어려웠다. 어머니 할머니뻘이라 더욱 살갑게 다가가려고 했다. 또한 양식장 주인 아들이라 거들먹거린다는 얘기가 나올까 봐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이며 처신에 주의를 기울였다. 새벽 3시 집을 나서 작업자들을 출근시키는 것도 강 씨의 몫이었다. 소비자와의 직거래 활성화아내도 알뜰살뜰 양식장 살림을 챙겼다. 고객을 응대하고 전화도 받으면서 틈틈이 SNS를 활용한 홍보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못 미더워하던 부친도 이제 그를 인정하는 눈치다. 거래처와의 단가 협상 등 중요한 자리에는 나서지만 거의 모든 일을 강 씨에게 맡기고 있다. 굴 양식은 7월부터 준비해 11월부터 수확에 들어가면 이듬해 3월까지 5개월간 수확이 진행된다. 나머지 기간에는 굴 양식장에 공급할 굴 종묘를 키운다. ‘어한기’가 없다. 굴 유통사업에 그가 가세하면서 거래처 다변화 등을 꾀해 번창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노량진 수산물 시장에서의 경매는 가격이 일정하지 않다. 이에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꾀했다.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인지도가 없어 들어오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오픈마켓을 통해 직거래를 시작했다. 수수료 부담이 있지만, 매출이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광주의 대형마트와 거래도 텄다. 이런 형태의 거래가 경매를 통한 출하보다 이윤이 좋아 점차 비중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부친이 ‘아날로그 경영’을 해왔다면 그는 ‘디지털’을 접목한 것이다.그는 “이제 판로 다변화 등 서서히 변화를 꾀해야 한다. 앞으로는 유통채널을 홈페이지로 대체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양식 공부도 꾸준히시장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양식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어촌어항협회에서 실시한 일본 북해도 선진지 견학도 다녀왔다. 성게와 연어 양식장을 둘러보면서 출하 방식 등 많은 영감을 얻었다. 특히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다. 지금도 교류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어촌체험장 등 6차산업 꿈꿔그는 “지금은 굴 양식에 주력하고 있지만 향후 가리비, 홍합 등 품목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굴 공급처를 활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판로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어촌체험마을 등 6차 산업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고흥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릴 정도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게다가 2009년 들어선 나로우주센터 덕분에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 원시체험의 섬 ‘시호도’ 도 있다. 이 때문에 가끔 작업장에 들러 굴을 사가는 이도 늘고 있다. 강 씨는 이들이 좀 더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마을에 ‘어촌 체험장’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 체험장에서 굴밥을 해 먹고 굴전도 부쳐 먹고 갯벌에서 바지락도 캐면서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여러모로 고민하고 있다”며 포부를 밝혔다. <자료제공 : 귀어귀촌종합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