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일 : 지난번에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두물머리 대화를 가졌습니다.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자 이번에는 한국DMZ평화 생명동산을 찾았습니다. 정성헌 : 이곳은 강원 인제군 서화면입니다.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한 부분은 교실과 숙소가 포함된 교육 공간입니다. 집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이름을 붙였습니다. 교육을 하는 곳은 삼경실입니다. 하늘(경천)과 사람(경인), 물건(경물) 이 세 가지를 공경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한 부분은 온갖 나무, 약초, 채소를 심어 생명을 살리는 큰 정원입니다. 보는 정원이 아닌 직접 일하는 정원으로 식당에서 먹는 대부분이 여기서 나옵니다. 바로 생명살림오행정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곳은 평화생명통일교육운동을 하는 곳이기에 집을 지을 때도 생명에 이롭게 흙을 많이 사용하고, 지열, 태양광, 태양열, 풍력 등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성헌 : 이곳은 최전방입니다. 6·25 이후에는 수복지역이라 불렀고, 적과 접하고 있다고 해서 접적지역이라고도 했죠. 지금은 경계를 접하고 있어서 접경지역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평화지역이라고 이름이 바뀌겠지요. 남북이 화해하는 그때는 그렇게 바뀌리라 봅니다. 민통선 가장 가까운 곳에 평화생명통일교육운동을 위한 교육공간을 만들고, 민통선부터 내금강까지 이곳을 어떻게 생명에 이롭고, 평화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 만들 것인가. 이를 지향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집들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윤종일 : 주위 경관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집들이 상당히 자연친화적인 것 같습니다. 정성헌 :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역임한 승효상 선생님이 이곳을 설계하셨 습니다. 제게 먼저 이곳의 건축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죠. 생명에 이롭게 해주십사 말씀드렸습니다. 생명에 이롭도록 흙을 많이 쓰고, 경사가 심한 이곳의 자연조건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친환경 건축소재로 내후성 강판을 사용했습니다. 1백50년 정도 지나면 모든 것이 허물어져 자연으로 되돌아갑니다. 그 이후에 철판만 회수 해서 다시 사용하면 됩니다. 이곳의 집들은 생명에 이롭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인간이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정성헌 : 평화와 통일의 뜻을 담은 탱크인 만큼 작은 행사를 가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입니다. 서화노인회, 서화초등학교 어린이들, 군인들, 우리와 교류하는 북한 탈북자 등 50여 명이 모였습니다. 다 같이 탱크 두 대를 칠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처음부터 여러 사람의 뜻이 모였기에 이곳에 올 때마다 저는 새삼스레 평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곤 합니다.
윤종일 : 탱크에 흰색을 칠한 점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백의민 족이기도 하고, 흰색이 평화를 상징하기도 하지요. 정성헌 : 내금강을 향한 이 탱크는 통일의 염원을 담았습니다. 우리의 통일은 민족통일인 동시에 3태극,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즉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그런 통일이 돼야 합니다. 윤종일 : 탱크 포신에 꽂힌 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 의미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정성헌 : 꽃처럼 남과 북도 하나가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북에서 좋아하는 진달래와 우리의 국화인 무궁화를 같이 꽂았습니다. 남북통일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하나 됨은 백 번, 이백 번 강조해야 한다고 봅니다. 윤종일 :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우리가 더더욱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닌 가 싶습니다. 정성헌 : 이곳은 생명살림오행동산입니다. 오행은 인간의 몸으로 치면 오장에 해당합니다. 간, 심, 비, 폐, 신 이렇게 5가지 각 부위에 좋은 나무와 약초를 이곳에 심었습니다. 오행동산을 만든 이유는 사실 따로 있습니다. 우리 나라 근린공원이나 유명한 공원을 보면서 저는 그곳들이 정체불명이라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됐습니다. 수 천 년 전 우리 조상의 우주관과 세계관에는 오행이 담겨 있었습니다. 공원을 만들 때 가능하면 우리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표현한 다음 외국 것도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공원에는 정체성이 없습니다. 정성헌 : 또 하나의 목적은 이곳에 몸에 좋은 것들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간이 나쁘면 평소에 무엇을 먹으면 되는지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지식을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성헌 : 우리는 이것을 평화의 나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잘 아시다시 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9.19남북군사합의를 했 습니다. DMZ 안의 적대적인 것들을 해체하는데 합의했지요. 상징적으로 전 방 감시초소(GP)를 폭파해 없앴습니다. 내금강 들어가는 길에 있는 가전리 6감시초소(GP)를 폭파, 해체하고 거기서 나온 각종 쇠붙이와 군번 표들이 이렇게 평화를 상징하는 것들로 바뀌었습니다.윤종일 : 앞으로 남과 북 각 정부와 정책 담당자들은 이런 상징적인 의미 를 깊이 명심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화해의 과정을 끊임없이 실천하고, 노력하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성헌 : 만사지식일완, 이곳 식당의 이름입니다. 직역하면 만사를 아는 것이 밥 한 그릇이라는 뜻입니다. 밥 한 그릇이 되기까지는 햇빛, 물, 땅, 벌 레, 바람, 농부가 필요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밥을 지어 상 위에 올려주시면 비로소 밥 한 그릇이 됩니다. 밥 한 그릇은 우주와 인간의 협력 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이치를 안 다면 모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종교의 식사 전 기도가 중 요하고 경건한 것이지요. 동학의 가르침이기도 한 이 뜻을 살리고자 식당 이름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정성헌 : 태양열 온수공급 장치를 통해 이곳 전체에 온수를 공급하고 있 습니다. 자연이 주신 것이니 최대한 아껴서 잘 사용해야 하지요. 여기 작은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더 작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빈 약한 것 같지만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작은 곳에 겨울이면 철 새가 날아들고, 온갖 풀, 수초,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자연의 복원력은 참 대단합니다. 윤종일 : 인간이 파괴한 것을 생태계가 스스로 복원해 나가는 과정을 이 연못에서 엿볼 수 있겠군요. 정성헌 : 사람은 그 이치를 잘 알아서 소극적으로 방해하지 않거나 적극 적으로 잘 도우면 될 것 같습니다. 태양광발전을 하고 있지만, 아직 자급자족은 어렵습니다. 조금 더 절약하 고 태양광 발전을 한다면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자연이 주는 것이라도 절약이 바탕이 돼야만 합니다. 윤종일 : 새마을운동중앙회도 태양광을 이용한 유기농법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와는 모습이 사뭇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성헌 : 태양광이 식물이 자라는 곳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 지요. 우리는 유기농 태양광발전소운동이라고 부릅니다. 아스팔트로 덮여 있 던 곳이라 땅심이 살아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지금 농사는 잘되 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생명평화공경운동으로 새로운 문명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고, 실천자세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표방했던 근면, 자조, 협동입 니다. 지구온난화로 기후위기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유기농태양광발전소법은 빨리 마련될수록 좋은 것이지요. 윤종일 : 강원도 인제 최전방 철책선 가까이에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 산의 가치와 철학들이 새마을운동으로 그 외연을 더욱 확장하고, 전국 국민 운동으로 전개돼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 정성헌 회장님의 기본적인 뜻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정성헌 :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새마을지도자 15만 명이 전 국 6만여 곳을 방역하고, 이웃을 위해 65만 개 이상의 마스크를 만들었습니 다. 봉사정신이 높으신 분들입니다. 새마을지도자들의 봉사정신과 생명평화 공경운동이 결합하면 나 자신은 물론 세상을 훨씬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새마을지도자들의 헌신과 봉사를 보면서 큰 기쁨을 느꼈고, 동 시에 제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윤종일 : 이런 자리를 통해 생명·평화·공경의 가치와 철학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지기를 다시 한번 다짐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