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이 길어지면서 질병으로 고생하는 기간도 늘어나고 있다. 아프지 않고 노후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수명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의 NHK방송국은 노인 40만 명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생활 습관에 대한 추적 조사를 실시했다. ‘예’와 ‘아니오’로 답하는 6백 개가 넘는 질문들을 빅데이터 분석했다. 질문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추출된 18만 개의 연결망을, 건강하다고 대답한 사람들과 건강하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들로 양분해 재구성했다. 건강 수명을 좌우하는 습관에서 가장 많은 상관관계로 나타나는 항목이 무엇인지를 추출했다.흔히 운동이나 식생활이 핵심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건강 노인들이 지닌 가장 공통적인 생활 습관은 다름 아닌 ‘독서’였다. 그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자료가 있다. 일본에서 건강수명이 가장 긴 야마나시(山梨)라는 소도시 주민들의 운동이나 스포츠 실천은 가장 낮은 편이다. 대신 두드러진 것은 인구당 도서관 수와 학교 사서의 배치율이 전국 1위라는 점이다. 미국 예일대에서도 독서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50세 이상 성인 3천6백 명을 12년 추적 조사했는데, 책을 읽는 그룹이 읽지 않는 그룹보다 2년 이상 더 살았다. 물론 독서가 정신을 살찌워 신체 건강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 내용을 들여다보면 약간 더 복잡한 상관관계가 있다.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의 생활양식 자체가 웰빙을 도모한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가 풍부할 뿐 아니라, 지성적인 사람들을 가까이하게 돼 심리적 안정감이 높다. 책 읽기 모임에 참석하느라 몸을 많이 움직이고, 도서관에 드나들고 그 안에서 책을 찾으러 움직이니 일정한 운동량이 꾸준하게 유지된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삶에 불어넣는 활력이다.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두뇌에 입력하고 기술을 습득하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능동적 행위다. 모르는 것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이 없으면 지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그런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준다. 인간의 노화는 뇌부터 시작하는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알량한 경험을 절대화해 내세우면서 젊은이들에게 군림하는 것이 전형적인 증세다. 책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그런 비좁은 울타리를 스스로 해체하는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배움을 생활화하면 타인과 소통할 때 늘 자신을 상대화하고 성찰할 줄 알기에 불필요한 갈등을 키우지 않는다. 노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가까이 지내는 가족이나 이웃 그리고 친구들과 안온한 공동체를 꾸려가는 것인데, 위대한 지성의 세계 앞에서 늘 겸허한 태도를 닦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존중하게 된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스승은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에게서 기꺼이 배우려는 의지는 삶의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킨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바이러스 재난은 개인과 집단 그리고 국가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삶의 양식과 사회 모델을 예고한다. ‘잠시 멈춤’은 전염병이 사라진 이후에도 간직해야 할 덕목이다. 외형적 성장을 향해 맹목적으로 경쟁하는 시스템을 지구 생태계는 더는 감당할 수 없다.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와 과로에 우리 몸도 짓눌린다. 이제 종종 멈춰 서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면 숨 가쁜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고령화 시대에 도서관은 심신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터전, 존재의 기쁨을 되찾는 성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