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직전 불어 닥친 태풍 ‘링링’은 “농작물 피해 2만 9천 헥타르, 인삼 시설·비닐하우스 파손 4백14헥타르, 가축폐사 2만 4천 수” 등 많은 농민에게 큰 피해를 남겼다. (9월16일, 농식품부 발표) 조속한 피해복구를 바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섰던 추석 성묘 길,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고향 농촌의 풍경은 태풍 ‘링링’의 상처에도 여전히 풍요롭고 평안했으며 아름다웠다. 일상의 시름을 잊을 만했으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일어 행복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농촌을 찾는 것만으로도 절로 얻어지는 행복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모두 농민의 수고로 얻어진 것일 텐데 우리는 그 대가를 농민에게 지불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은 식량생산과 공급 외에도 영농행위와 결합되어 많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안전한 먹을거리의 안정적 공급을 통한 국민건강증진, 환경과 경관보전 등 자연 생태계의 유지, 전통문화의 유지와 발전, 지역(농촌)경제의 유지와 활성화, 국민의 여가선용과 정서함양 등 헤아릴 수 없는 가치들을 생산하고 조건 없이 모두가 공유하게 한다. 즉 농업 자체가 ‘공공재’ 인 것이다. 물론 부정적 외부효과도 발생한다. 화학비료나 농약, 비닐, 석유 등 과다한 외부자재의 투입에 따른 환경부하 가중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동안 영농과정에서 배출한 부정적 외부효과는 산업화과정에서 정부정책으로 농촌에 강요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 열거한 물질들이 바로 중화학산업의 육성에 따른 부산물을 농촌에 투입한 것이고 사용을 장려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주식인 쌀 자급 이후 지난 30여 년간 농업정책은 전면적인 농산물시장 개방에 대응하여 구조조정을 통한 (가격)경쟁력 강화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농촌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농가소득 정체, 수입농산물과 경쟁 심화”로 나타나 농업여건의 악화는 물론 농민의 삶의 질 또한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이는 결국 농업·농민문제를 떠나서 식량자급률 하락과 수입식품의 범람으로 인한 국민건강 위협 등 국가와 국민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다. 유독 농업에서만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실패가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농업의 1차 생산물인 농산물의 가격보전 정책만으로는 농업도 농민의 삶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나아가 당면한 ‘무역전쟁’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자국우선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국제정세에 비추어 식량마저 자급하지 못하게 되면 국가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기후변화가 이를 예고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앞서 언급했던 농업의 본래 기능인 식량공급을 포함한 공공재 생산기능, 즉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주목해 농업정책의 목표를 농업의 공공재 생산 증진에 맞추고 이를 수행하는 농민의 수고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정책추진과정에서 농업의 부정적 외부효과를 최소화시키고 긍정적 외부효과가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재 ‘농업직불제의 공익형 직불제로의 확대 개편’ 문제가 정부와 국회, 농업계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2017년 ‘농업의 공익적 가치 헌법 반영 서명운동’ 두 달여 만에 1천1백5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던 사실은 국민의 동의와 지지가 노력 여하에 따라 가능함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농촌사회 곳곳에서 농민의 공익적 활동에 따른 ‘농민수당’ 지급 등이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제정되는 등 확산일로에 있는 점도 매우 반가운 일이다. 공익형 직불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 농민은 공익적 기능 담당자로서 높은 자긍심과 책무감이 필요하고 국민은 공공재 사용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참다운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