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전망을 둘러싸고도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북을 비롯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의 주요 관련국들도 갈등과 대립의 지난 시기로의 복귀보다는 평화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상대방의 역할을 주문하는 것을 볼 때 전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일본제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진주한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남북에 각각 독자정권이 수립되고,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 대립과 갈등, 화해와 협력, 그리고 다시 제재와 전쟁 불사의 시대를 거쳐 왔다. 2018년 3차례의 정상회담과 1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에 평화시대 도래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 하지만 회담은 결렬되었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지향은 분명하지만, 아직 이의 현실화 여부는 불투명하다. 남북이 별도로 추진했던 사업들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답보상태이다. 이유는 국제사회 제재의 엄존, 북측의 미온적 태도, 남측의 중앙정부 중심의 통제적 사고와 관료들의 소극적 자세 등 여러 가지이다. 북측은 남측이 실질적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사업과 조치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고, 남측은 개성연락사무소 철수 후 복귀, 남북 간의 합의 내용 이행을 위한 만남에 응하지 않는 것 등을 보며 북측에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7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 동북아 안보협력체제의 구축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 수월한 일일 수가 없다. 현 질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어떤 조치에도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들은 잔뜩 움츠려 있다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결렬 이후 조성된 상황을 반기고 있다. 우리 사회 내부만 봐도 핵무장 발언이 다시 등장하고, 심지어 ‘9·19 군사분야합의서’ 취소 주장 등도 서슴지 않는다. 대북 지원에 대한 누적된 피로도, 점차 하락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지지도, 경제 상황 악화 등도 남북관계의 진전을 추동하는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서 우려되는 지점이다.하노이회담 결렬을 통해 확인한 것은 미국이 세계의 유일무이한 단일 패권국가이며, 미국을 상대로 한 모든 협상은 불공정한 경기라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한미 간의 방위비 논의, 북미 간의 한반도 비핵화 협상…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일방적 강요와 이의 수용 외에는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철저히 불공정한 이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각 주체는 때로는 윤리적 잣대를, 때로는 현실적 힘 관계를 고려하며,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 있도록 발언과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을 뿐 현실은 미국 요구에 대한 수용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미국식 셈법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 토로는 미국이라는 압도적 거대강국의 힘에 대한 무력감의 확인이었다.그러나 세상은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강대국인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의 의사결정 역시 여러 요소의 고려 속에서 나온다.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을 찾아내 설득하고,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남북은 각각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과 제14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를 예정하고 있다. 남북의 소망은 한반도와 지구에서의 ‘생명평화공동체’의 실현이다. 이의 구현을 위한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하나의 변곡점에서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일상에서 교류협력이 본격화될 때를 대비해 사람과 제도와 추진 주체를 준비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의 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