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제대로 안 보고, 제대로 못 보고 내린 판단은 편견이나 고정관념일 뿐이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현상들은 시시각각 변한다.
IT(정보통신) 발달과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의 등장은 ‘시시각각’의 단위를 더욱 촘촘히 쪼개고 있다. 변화의 속도와 크기는 무서울 정도다. 우리나라처럼 IT 선진국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서울 등 수도권 도시나 지방 거점도시에서 농촌으로 생활기반을 옮기는 사례들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뉘는 줄 알았다.
건강이 나빠져 요양할 곳을 찾아 떠나거나, 갑자기 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서라는…. 이런 관점의 귀농은 수동적이고 현실 도피적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모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도 ‘귀농의 이분법’에 적지않게 기여했으리라. 출연자들 사연은 대부분 ‘악화한 건강’ ‘경제적 어려움’ ‘트라우마 치유’ 등이다. 프로그램 왕팬들로서는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법도 하다.
시골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대도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라면 이분법적 인식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이런 연유로 젊은이들의 시골행은 ‘뭔가 사연이 있겠지’라는 짐작부터 하게 만들었다.
농수축산업 현장의 소식을 자주 접하는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귀농 사례들을 듣게 된다. 최근에 전해지는 많은 귀농 사례들은 이런 인식에 큰 혼선을 주고 있다. 아니 혼선이라기보다는 오류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몇 년 새 농촌지역으로 터전을 옮긴 청년농들은 자신들만의 블루오션을 찾는 실험을 벌이고 있다. 건강한 먹을거리 생산, AI(인공지능)농업, 사회생활 경험을 접목한 영농 등을 통해서다. 벌써 튼실한 결실을 거두는 곳도 적지 않다.
강원도 평창에서 ‘흥’이라는 농업법인을 세운 차대로 대표는 고추냉이를 기른다. 상토 양액재배라는 자신만의 비법을 활용해서다. 저온에서 자라는 고추냉이의 특성을 감안해 평창 산기슭에 터를 잡고, 의기투합한 지인 2명과 같이 농사를 짓는다. 귀농 2년 차인 올해 고추냉이를 처음 수확했다. 한우보다 비싼 ㎏당 20만 원에 팔아 2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큰 경사가 또 생긴다. 장래를 밝게 본한 기관투자가가 수십억 원의 큰돈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 돈으로 재배 시설을 크게 넓히려고 한다. 수요는 많은데 생산 물량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내년 물량은 벌써 계약판매 중이다. 대형 유통업체는 잎부터 뿌리까지 모두 돈 주고 사겠으니 미리 달라며 입도선매를 간청하고 있다. 일본산 ‘와사비’와 싸워서 이겨보고 싶어 수출채비도 하고 있다. 당연히 시설 확장은 필수다. 차 대표는 귀농 직전 3년여간 12만 주의 고추냉이를 재배하면서 실패를 거듭하며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농업 테크 기업을 외치는 그린랩스. 최정원 마케팅본부장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 사무실이 아니라 전국 시청과 군청으로 출근한다. 스마트 팜이 얼마나 필요하고 우수한지 농민들을 설득하고, 해당 지자체를 통해 정책자금을 지원받도록 다리를 놔주기 위해서다.
그린랩스는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접목시키면 농업의 부가가치를 무한대로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농업데이터를 농부에게 제공해 각종 농사 관련 결정을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돕는 방식을 통해서다. 그린랩스 신상훈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출신으로 IT업종 기업 몇 개를 창업해 성공시켰다. 각자 대표인 안동현·최성우 대표도 소셜커머스 등의 업체를 세워 경영한 경험이 있다. IT 전문가들이 사업 항로를 농업으로 변경한 것이다.
이들 두 곳은 말 그대로 예를 들기 위한 사례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깼거나, 과감한 탈피를 시도하는 청년농들은 대한민국에 차고도 넘친다. 다만 보이는 만큼 보지 못할 뿐이다.
청년농들은 그동안 귀농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는데 머물러 온 사람들을 자기반성으로 이끌고 있다.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농업이라는 블루오션에서 힘찬 항해에 나선 청년농들이 계속 순항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