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과 재해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질병과 재해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으로 다가올 뿐만 아니라 가장 큰 피해를 안긴다. 질병은 위생과 영양이 취약하고 의료접근이 어려운 가난한 사람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한다. 특히 역병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매우 큰 위협이다. 자연재해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재해는 누구에게나 큰 위협이지만 지구의 ‘살갗’에서 사는 1차 산업 종사자들인 농어민에게는 생계수단인 농수산물의 생산을 어렵게 하는 차원을 넘어 생명 자체를 직접적으로 앗아가기도 한다. 농민에게 닥치는 재해는 자연재해인 천재(天災)와 영농작업 중 일어나는 안전사고로 인한 인재(人災)로 구분된다. 올 한 해 농민은 설상가상(雪上加霜)격의 자연재해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봄철 개화기의 저온현상으로 인한 냉해와 7~8월 최장의 장마와 호우, 거듭 불어 닥친 태풍으로 과수와 벼농사 등 피해를 입지 않은 작물이 없을 정도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지난 9월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심의를 통해 재해복구지원단가 인상 및 항목 확대, 생계비지원, 특별금융지원 등 대책을 마련하고 조속한 피해복구를 위해 힘쓰고 있지만, 농민이 체감하는 어려움을 모두 해소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영농작업 중 일어나는 안전사고와 불편한 농작업의 특성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또한 매우 심각하다.현재 농작물에 대한 자연재해 대책으로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업재해보험법을 통해 재해의 종류를 규정하고 지원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책보험 성격으로 2001년부터 사과와 배 두 품목으로 출발한 농업재해보험은 대상품목이 올해 67개 품목으로 많이 늘어났으며. 지난해 19만 5천 농가가 9천89억 원의 보험료를 받는 등 피해 농가의 재기와 경영안정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사과와 배 등에 편중된 가입과 전체 30%대의 저조한 가입률, 손해평가의 신속성과 정확성 제고, 정책보험이지만 민간보험회사를 통한 운영 등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과제 또한 많은 실정이다. 농기계사고를 비롯하여 농작업 중 사망한 농민만 최근 8년간(2012~2019년) 매년 2백78명이라고 한다. 농업인안전보험 가입률이 지난해 말 65%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 1명 이상이 농작업 재해로 사망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현재 농업인안전재해보험은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예방에 관한 법률과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하여 정책보험으로 농업인안전보험·농기계종합보험·농작업근로자안전보험이 있는데 모두 민간보험회사가 판매한다. 농작업 재해률은 다른 산업의 1.5배~2배에 이르지만, 대다수 농민은 자영농이라는 특성으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의무적 산재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며, 위에 열거한 민간보험에 임의 가입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마저도 산재 보험에 비해 낮은 급여 수준과 1년 단위 재가입 등 운영상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각종 재해로 인한 농업의 어려움은 비단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생산기반의 파괴와 수확량감소는 당장 물가인상 등 소비자의 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식량안보까지도 위협한다. 따라서 농업과 농민 재해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전환과 함께 국가의 공적인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우선은 농업의 공공재 생산기능을 확고하게 인식하고 농어업재해대책법을 개정하여 피해지원 차원을 넘어 공적 보상체계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농작물재해보험 또한 실질적인 경영안정대책이 될 수 있도록 보다 꼼꼼한 재설계가 필요하다. 영농작업 중 일어나는 재해나 장시간 농업노동에 따른 질환 또한 민간보험에 임의로 가입하는 형태가 아닌 노동자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산재 보험처럼 누구나 당연히 가입하는 공적 사회보험으로 전환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