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간의 갈등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가리켜 ‘꼰대’라 부르고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 것들’이란 말로 응수하곤 합니다. ‘꼰대’란 원래 학생들 간에서 ‘선생님’을 의미하던 은어였는데, 이젠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진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처방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좋은 얘기들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의 처방들은 결국 ‘얘기하지 말고 참견하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되는 경우가 많아, 세대 간의 갈등이 결국 ‘세대단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사실 세대 간의 갈등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늘 있었습니다. 지금의 기성세대도 젊은 시절에 진로, 친구관계, 결혼 등의 문제를 놓고 부모님 세대와 갈등을 빚었던 일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간의 갈등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것은 급격한 사회변동, 인구구조의 변화 등 여러 가지의 사회적 원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사회적 요인 외에 우리 각자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의 세대 간 갈등에는 의식의 문제가 사회적 요인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의식의 문제’는 곧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양식으로서 민주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뜻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1987년에 이룩한 민주화는 이제 한 걸음 더 진보해야 합니다. 1987년 이후 우리가 자부해온 민주화의 성공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다시 말해서 내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가치개념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실천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일일 것입니다. 내 인생의 신념과 경험적 확신조차도 다른 사람의 비판에 개방되어 있다는 사고방식,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 관용과 다양성을 긍정하는 마음가짐, 이것들이 바로 민주적 정신입니다. 민주적 태도와 정신이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공적·사적 대화와 토론의 장에서 일상적으로 실천될 때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얼마 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갑질 문화 그리고 미투 운동 또한 일상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부재하거나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병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험과 관점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경험이 다르면 관점도 달라집니다. 1950년대 대한민국에 태어난 60, 70대의 인생 경험과 1990년대 태어난 20, 30대의 인생 경험은 그 양에 있어서나 내용에서 전적으로 다릅니다. 그래서 세계관과 가치관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전망 또한 다릅니다. 비유하자면 총 1백km 정도의 여행에서 목적지를 20km 정도 남겨 둔 여행자와 아직도 80km를 더 가야 하는 여행자의 전망은 다를 것입니다. 세대 간 의견과 관점이 다른 것은 당연하며 불가피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경험과 전망을 절대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이러한 태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대화가 곧 갈등 해결은 아니지만, 대화 없이 갈등 해결은 불가능합니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지혜를 요구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두고 한 말입니다.지혜란, 내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자각하는 일이며,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꼰대’니 ‘요즘 애들’이나 하는 말들을 버리고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상호 공경하는 마음으로 세대 간의 대화를 시작하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