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위력이 오랫동안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서 탁월한 연주자들이 이미 여럿 등장하여 한국의 위상을 드높여준 바 있다. 한국인에게 음악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하다. 음악은 우리의 감성을 순화시키면서 타인과의 새로운 만남에 초대한다. 폴란스키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생생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 주인공인 유대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도시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건물 안에서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된다. 그의 직업이 밝혀지자 장교는 마침 옆에 있는 피아노를 가리키면서 연주를 청한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쇼팽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은 그 영화의 압권이다. 독일군 장교는 피아니스트를 체포하거나 죽이기는커녕, 음악에 감동하여 그에게 음식을 가져다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피아노 한 대가 생명을 살려 낸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주인공은 감옥에 기증되는 도서를 정리하다가 책들과 함께 배달된 레코드판에 눈길이 머문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노래들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편지의 이중창’이라는 노래를 골라 턴테이블에 얹고 감옥 전체 스피커에 연결한다. 간수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볼륨을 높인다. 죄수들은 모든 동작을 멈추고 여자 성악가의 이중창에 홀연히 빠져든다. 그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독백이 흐른다. ‘그 목소리는 이 회색 공간의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 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우리는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음악에는 인간을 다른 세계로 초대하면서 존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듯하다.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 프로젝트는 그것을 증명해준다. 가난과 폭력에 찌들어 사는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쥐여주고 음악교육을 시키면서 오케스트라로 조직하는 프로그램인데, 전국에 20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참여한다. 그 활동을 통해서 자기 안에 숨어 있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현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는 방법을 깨우친다. 합주를 하려면 다른 소리들을 잘 들어야 하기 때문에 경청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능력이 자라나는 것이다. 거기에 참여하면서 삶이 달라진 어느 소년은 이렇게 고백한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되었다.”엘시스테마 프로젝트는 문화부가 아닌 복지부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예술을 통해 생활과 관계를 복원하고 사회를 재생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복지의 궁극적인 목적이 내적인 힘을 키워 스스로 일어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볼 때, 음악은 훌륭한 통로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그런 사례들이 많다. 골방에 갇혀 있던 장애인들이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고 무대에서 세상을 새롭게 만난다. 그 가족들은 부모나 자녀가 갈채를 받는 모습에서 자부심을 얻게 된다. 그런가 하면 합창단에 함께 참여하면서 만성적인 갈등이 저절로 해결되었다는 부부의 이야기도 들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해 골방에 갇혀 버린 주인공은 거실에서 누이동생이 하숙인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리를 엿듣게 된다. 그러면서 탄식한다. “이렇게 음악이 마음을 사로잡는데도, 내가 한 마리 벌레란 말인가!”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존귀할 수 있다. 예술이 빚어내는 작은 기적들이 일상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 삶이 구차스럽고 모멸감으로 가득 차오를 때, 벌레만도 못한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깔아뭉개고 싶을 때, 음악의 울림과 떨림 그 신비에 잠시 나를 맡겨보자. 사람과 사람을 새롭게 묶어주는 예술의 힘으로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상상하자. 존재의 고결함을 빚어내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