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해 ‘감염병 세계적 유행’ 소위 팬데믹을 선언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각국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이동제한을 해왔다. 아마도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널리 보급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방식의 생활은 지속될 전망이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이러저러한 예측들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 중의 하나가 ‘비대면 사회’ 소위 언택트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한다. 비대면 사회란 서로 대면하지 않고 활동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말한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비대면’이란 인류에게 그렇게 낯선 경험은 아니다. 인류가 최초로 경험한 비대면 문화는 문자의 발명에서 비롯된다. 문자는 대면을 꼭 필요로 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도구다. 편지나 책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후 인류문명은 대량 인쇄술 그리고 20세기 이후 전기통신 기술 개발 등을 통해 문자를 통한 비대면 사회의 공간을 계속 확대해 왔다. 불교나 기독교의 한반도 전래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본적도 만난 적도 없이 ‘문자’를 통해 성인들의 가르침을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399년)는 현자(賢者)의 가르침을 대면해서 배우지 않고 ‘문자’를 통해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문자를 통한 가르침을 크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인류는 지금까지 ‘문자’를 통해 문명을 전수하고 또 그 전파의 공간을 확대해왔다. 서양보다 동양은 더 일찍부터 문자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경전이란 곧 ‘책’을 의미할 만큼 문자를 통한 가르침의 전수를 중요시해 왔다. 사실 비대면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을 비롯한 기차예매, 은행업무, 주차 요금 등 상당히 많은 비대면 일상이 이루어지는 사회에 이미 살고 있다. 전화통화, 문자메시지, 카톡, 이메일 등도 엄밀하게 말하면 비대면 문화의 산물들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이후 더욱 확대될 사회적 비대면의 상황을 불안해하기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대면’ 즉 얼굴을 마주 보고 사람이 한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는 일이다. 한 공간에서 함께 있으면서, 대화하고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 공간은 지루하고 각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속박의 공간일 뿐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사회의 등장이라는 것이 사상 초유의 일도 아니고 어찌 보면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량 인쇄술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문화적 혜택을 입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면을 통해서만 이루어져 온 대학 강의가 온라인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또한 불필요하게 회의를 소집하거나 구두로 대면 지시를 해야만 안심이 되는 일부 상급자들의 직성도 이번 기회를 통해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비대면 문화의 확산을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소위 ‘댓글’문화다. 인터넷 공간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론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대면과 익명성을 악용하는 네티즌들로 인해 지금 우리의 인터넷 공간은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고 있다. 상수도와 하수도는 둘 다 필요한 생활 설비이지만 상수도와 하수도가 분리되어야만 하듯이 인터넷 공간 또한 하수도의 배설물과 상수도의 음용수가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될 비대면 사회의 공공성과 건강을 생각할 때 인터넷 댓글에 대한 사회적 제도의 정비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