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논란이 있지만, 한반도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편입된 시기를 우리 근대의 출발로 본다면 1876년 일본과 맺은 병자수호조약 일명 강화도조약을 그 출발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시 조선사회 내부적으로 근대(자본주의)로 성장할 수 있는 단초들이 보였다고는 하나 타율적으로 진행된 근대로의 진입은 국권상실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1884년의 갑신정변,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경장, 1905년 애국계몽운동 등은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라는 근대를 수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으나, 1910년 한일병탄 경술국치로 막을 내렸다. 의병항쟁과 일제 강점하에서 1919년 3.1운동을 위시한 치열한 독립투쟁은 국내는 물론 국경을 넘은 해외에서도 국제사회와 연대하며 진행되었다.천신만고 끝에 얻은 해방이었으나 동서냉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이라는 세계사적인 거센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남과 북에는 각각의 독자정부가 수립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남북은 대부분 시간을 대립과 갈등으로 보내고, 부분적으로 긴장완화와 협력을 모색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은 3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고,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도 2차례나 열렸으나 아직 한반도에 평화시대의 도래를 전망하기에는 많은 것이 불확실하다. 그 사이 남북은 대한민국과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사회에서 두 개의 성원이 되어 활동하고 있고, 부분적 성취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몇 안 되는 신생독립국가이고, 조선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는 상황에서도 미국이라는 절대패권국가에 맞서 자신들만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부분적 성취의 이면에는 성장의 정체와 생태계의 파괴, 빈부·세대·이념에 따른 공동체의 분열, 만성적 식량난에 허덕이는 세계 최고로 가난한 나라라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100년 전 3.1운동의 기미독립선언서는 “무력의 시대가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오고 있다.…우리가 본래부터 지녀 온 권리를 지키고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맘껏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문화를 찬란히 꽃피우게 할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다.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은 과연 기미독립선언서의 그러한 염원을 실현했는가? 이 염원의 실현을 가로막았던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타율에 의해 진행된 근대의 수용과 기형화·왜곡,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분단이 있다. 근대를 자본주의의 수용과 국민국가의 수립으로 정의할 때 우리는 아직 온전한 의미에서의 한반도 차원의 근대를 수용하고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여전히 안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 수용과 극복은 분단을 넘어서지 않으면 반쪽자리에 불과함을 지난 역사는 웅변하고 있다.근대의 극복이란 시장 중심, 자본 중심, 성장과 개발 중심,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뭇 생명과의 공존과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한다. 분단의 극복 역시 시장과 자본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세계의 패권적 질서와의 대립과 긴장이 불가피하다.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작은 실천은 불편하고, 큰 실천은 두렵다.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은 자치와 자급의 삶이다. 에너지는 자립하고, 경제적으로는 유기순환농업을 통한 자급을 실현하며, 마을에서부터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구현한다. 큰 실천은 불의한 세력과 질서에 맞서는 사회정치적 결단을 요구한다. 두 실천은 하나이며, 이것이 한반도 평화생명공동체로 나아가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