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역대 최악의 상황으로 한일관계가 치닫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갈등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내수보다는 압도적으로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에 일본이 취한 부품소재 수출제한 조치는 우리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있고, 이미 주가를 비롯한 여러 경제 지표들은 흔들리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이러한 조치에 강력히 항의하며, 대화를 통한 해결과 일본이 취한 조치의 수위에 따른 맞대응을 예고하고, 시민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 관광취소, 항의집회 등으로 함께 하고 있다. 아베 정권의 일련의 조치는 지난 정부에서 체결한 위안부합의의 폐기, 한국 법원의 강제노역 배상 판결과 전범기업 자산 압류 등으로 누적된 일본사회의 반한 감정을 자극하고, 이에 기반을 두어 평화헌법 개정 및 전후 최장기 집권을 위한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대변되는 경제 불황, 후쿠시마 원전 사고 앞에서의 절망, 3백만 명 이상의 2차 대전 희생자에 대한 야스쿠니 합사와 예우, 유족연금 등을 통한 촘촘한 관리, 역사의식 없는 정치인들의 선동이 성격은 달리하지만, 희망 없는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부추기는 요소임은 틀림없다. 한일관계가 외나무다리의 대결적 국면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이것이 정상적이며,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공존 방식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우리의 이웃나라이며, 양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깊숙이 결합하여 있고, 인류의 많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1천5백년 이상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공존해왔다. 다만 일본이 일으킨 4백여 년 전의 7년간의 전쟁, 20세기 초 35년간의 식민지배라는 불행한 시대의 불편한 기억이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서도 안 되지만, 과거에 대한 성찰 없이 미래로 나갈 수는 절대로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사회가 안은 많은 문제는 분단에서 기인한다. 한반도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시대로 나아가려면 주변국의 이해와 동의,이를 위한 환경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은 식민지배의 책임이 있고, 이는 전후 한국이 분단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은 일본이 패전의 상처를 딛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분단이 해소되는 상황을 연출하는데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시대 도래를 지지하고, 동아시아에서 공동의 집을 구축하는데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하도록 주문·안내해야 할 것이며, 그것의 관건은 북일수교이다. 한국과 일본의 문제를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한국과 일본은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우선 양국의 지도자들이 대결을 부추기며 상대방을 자극하는 발언과 행동을 자제하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시민사회에서 1천4백여 명의 지식인들이 성명을 내고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조치 철회운동에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 시민사회 역시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시가 아니라 보다 미래지향적이며 성숙한 모습으로 여론을 이끌고, 불행한 과거와 결별하고 비핵화를 넘어 새로운 평화와 생명의 동아시아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