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가게는 환경오염과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한 제품을 전시·판매하는 광주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가게다. 흔한 홍보 하나 없었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제로웨이스트 가게에 비하면 구비한 물건도 많지 않다. 뜻이 통한 걸까. 일회용품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사람 들이 모여들었다. 그저 입소문을 타고 전주 에서, 보성에서, 멀리 순천에서도 이곳 광주 를 찾았다. 하루 2백여 명의 방문객. 송정마을 까페이공 한 편에 마련된 가게에 사람들 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더해지고 있다. 10월 15일부터 12월 5일까지 운영하는 반짝매장(팝업스토어 다듬은 말-국립국어원)으로 문을 연 지 한 달 반 만에 2천여 명이 다녀갔다. 작은 한걸음이지만 단단한 실천들이 모여 전환의 길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곳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부제는 ‘쓰레기를 줄이는 우리 동네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이다. ‘일회용품 없는 일상 만들기’가 광주사회혁신플랫폼 혁신 의제로 채택 돼 증흥건설, 송정마을 까페이공, 서울 알맹상점, 유어스텝 등의 협업으로 탄생했다.쓰레기 제로가 아니다 지구도 구하고, 환경도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면 또 모를까. 분리배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포장재가 없는 제품을 구입하고,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품을 사용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줄이기 와 제대로 버리기가 한걸음가게의 목표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쓰레기에 대한 작은 인식 전환을 꾀한다. 나도 한 번 해볼까 이곳은 천연수세미, 대나무칫솔, 고체치약, 다회용 빨대, 면화장솜, 천연세제 등 일회용이 아닌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하고,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한 50여 종의 제품을 판매한다. 서울 알맹상점의 도움으로 물품을 공급받는다.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살 물건이 많을 때 대나무 소쿠리에 담는다. 자율 포장대에는 종이로 된 봉투와 완충재가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한다. 가게 한쪽 ‘모두의 게시판’에는 환경, 에너지 등에 관한 정보와 지구를 살리는 다양한 활동, 행사소식이 공유된다. 누구나 참여해 따라할 수 있는 자원순환 워크숍도 진행한다. 매장과 게시판을 둘러보고 잠깐 다리를 쉬게 할 요량으로 앉았더니 키 작은 책장이 눈에 들어온다. 거름책장이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름이 될 책을 모았다고 한다. 자리에 가져가 보거나 대여도 가능하다. 우리 동네 자원 회수센터 한걸음가게 안에는 우리 동네 자원 회수센터도 있다. 한 번 만들어진 자원의 쓰임과 순 환을 고민하는 작은 실험의 장이다. 잘못된 방법으로 버려져 재활용될 수 없는 것들을 잘 버리고, 잘 활용하기 위해 모은다. 알록달록 병뚜껑, 종이가방, 투명유리병, 종이팩 등이 이곳에 모아진다. 재활용 공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는 투명유리병은 재활용 대신 재사용한다. 종이팩은 따로 모아 화장지로 재활용한다. 재활용되지 않는 소형 실리콘 제품은 도시락 패킹으로, 신발끈은 각종 주머니 끈으로 사용된다. 모아진 종이가방은 송정 5일장을 찾는 시민에게 비닐봉지 대신 나눠준다. 마침 이날 인근 빵집에서 급히 필요하다고 종이가방 20장을 가져갔다. 저 종이가방들은 돌고 돌아 분명 이곳 자원회수센터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음료병 뚜껑 같은 아주 작은 플라스틱은 선별 공정에서 분리가 어려워 대부분 버려진다. 자원 회수센터에 모아진 병뚜껑은 분쇄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시민이 물품을 모아서 가져오면 발걸음 도장을 찍어준다. 도장 다섯 개면 대나무로 만든 지구칫솔(한걸음가게 판매물품)을 받는다.
브리타 정수기 필터의 몰랐던 사실 전기도 필요 없고, 크기도 작고, 무엇보다 손쉬운 필터 교체로 많이 사용되는 브리타 정수기.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호주 등에서는 다 쓴 필터를 회수해 재활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앞서 열거한 나라에서는 진열대 옆에 폐필터 수거함을 비치하거나 소비자가 필터를 돌려보내면 재활용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친환경 물질이니 재활용쓰레기로 분리 배출해도 된다고 밝힌 브리타 코리아는 자체적인 재활용 회수 프로그램은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된 필터 안에는 활성탄과 양이온수지가 섞여 있어 내용물을 제거해야 하 는데 뚜껑도 없고, 열리지도 않는다. 비우거나 헹구거나 분리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한 시민이 6백 개의 폐필터를 모으고 1만6천 명의 서명을 받아 회사에 전해 그 결과 미국에 재활용 회수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현재 한걸음가게는 브리타 정수기 폐필터를 모으고 서명도 받고 있다. 서울 알맹상점을 비롯해 전국 18개 상점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새로운 한 걸음을 향해 반짝매장 종료 하루 전 가게를 찾았던 기자에게 운영진이 반가운 귀띔을 했다. 임시매장은 종료되지만, 다시 오픈해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운영을 담당한 김지현 대표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만만함,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모두의 한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정책적으로 제도화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모두를 바꿀 수는 없어도, 나는 바꿀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삶에 관한 책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에 나온 말이다. 소비는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발생시킨다. 조금 불편해도 개개인이 일상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머지않아 쓰레기 없는 삶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글=이현주 기자 hjlee@ 사진=안희선 기자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