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첨예한 공공정책을 결정하거나, 이 해관계가 다른 사회 구성원 간에 합의를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일반 시민이 참여하여 학습하고 토의하는 공론화(公論化)가 경향각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2022년 대입제도 개편, 국 민참여예산, 평화·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 등을 수행한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서울·대구·대전·광주·경기·제주·창원 등 각급 지자체에서 다양한 의제로 공론화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공론화는 현대 대중사회의 보편적 정치체 제인 대의민주주의와 전문가(엘리트) 중심 사회체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대의민 주주의와 전문가 중심주의는 다양한 시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는 문제와 함께, 서로 다른 성격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쟁점을 해소해야 하는 대리인(국회의원, 정부관료, 직능단체 대표 등)의 역량 문제를 야기했다.사회가 발전하고 분화할수록 더욱 도드라진다. 이에 대한 유력한 대안으로 숙의민주주의가 대두됐다. 숙의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이 정치와 정책 과정에 참여해 숙의와 토의를 통해 집단지성을 발현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숙의민주주의는 시민이 직접 참여해 토의하고 숙고한 결과에 따라 운영되는 민주 제도인 것이다. 이러한 숙의민주주의의 작은 구현체가 공론화이며, 공론화의 요체는 경청토의(傾聽討 議)다. 공론화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대표하는 참여 시민의 숙의된 생각과 입장을 총 합하는 절차인 바, 말하기 보다는 듣기, 승패를 가르는 토론보다는 다름을 존중하는 토의를 통해서 보다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경청토의는 경청토의 규칙에 기반하여 훈련받은 퍼실리테이터가 이끈다, 시민은 퍼실 리테이터로부터 모두에게 지혜가 있으며,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토의에 임하도록 동기부여를 받는다. 시민은 자료집을 학습하며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전문가 발표를 듣고 전문가와 질의 응답을 하면서 몰랐거나 불명확했던 것을 알게 된다. 평소 같이 있는 것도 부담인 타인과 공감하는 대화 체험을 하게 된다. 더불어, 확신에 찼던 자신의 생각이 흔들리고, 온전하다 여겼던 앎이 불완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론화 경청토의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이해와 입장이 변화하는 숙의적 전환(deliberative transformation)을 체험하게 된다. 경청토의 기반 공론화는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공론화 후에 ‘내 생각 과 다른 정책이 채택되더라도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90%를 상회하며, 공론화를 주관한 정부와 공공정책 추진에 대한 불신이 완화된다. 신고리 5·6호기 시민참여형조사의 경우, 공론화 전후에 자신의 생각을 바꾼 시민이 41%에 이르렀다. 경청토의 기반 공론화가 아니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결과라 할 것이다. 최근 민주시민교육이 각광을 받고 있다. 잠재된 시민성을 깨우겠다는 엘리트의 시각 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시민은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민은 숙의하고, 경청하고, 토의할 공론장(公論場, public sphere)만 마련되면, 잠재되었던 시민성을 스스로 깨운다. 이는 경청토의 기반 공론화에 30여 차례 이상 참여한 필자의 예외 없는 경험이다. 새마을운동도 일상에서 경청토의에 기반한 생활 속 공론화를 실천하면, 조직 안팎에서 ‘숙의적 전환’이 일어나고 잠재된 시민성이 되살아나면서, 이 시대의 가장 근본적이고 절실한 생명살림운동이 ‘누가 시켜서 하는 남의 일’이 아닌 ‘내가 스스로 우리가 함께’ 펼쳐나가는, 그야말로 전 국민의 운동으로 확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