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11일은 법정 기념일인 ‘농업인의 날’이다. 농민의 수고를 기리고 축하하고자 제정한 이 날의 명칭을 두고 일각에서 ‘농민의 날’로 변경해야 한다는 등의 문제제기와 함께 ‘농민’에 대한 ‘정의’를 올바르게 정립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즉 ‘농업인’은 농업 생산자로서 산업화 논리에 따른 협소한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를 살려 ‘농민’으로 칭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여기서 본래의 농민은 농산물 생산자로의 역할 뿐 만 아니라 인류문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자부심과 사회와 국가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서 소외됨이 없이 대등한 지위를 누려함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특히 농업·농촌 관련 정책에서 소외되는 농민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농민’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지위와 역할이 매우 다양하게 표출되어왔으나 ‘농민’으로서의 ‘호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요구와 호명에 따라 그 지위와 역할 또한 달라지는 것이 분명함으로 차제에 ‘농민’ 또는 ‘농업인’에 대한 정체성을 재조명하고 관련 법령들을 정비하는 것도 매우 의미가 큰 일일 것이다.‘농민’은 사회통념이나 사전적 의미로는 농사를 생업으로 농촌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러나 현재의 법과 제도, 정책의 범주에 농민이라는 용어는 없다. 대신 ‘농업인’으로 정의된다. 「정부조직법」에 따라 농업·농촌·농민·식품 등에 대한 사무를 관장하는 곳은 농림축산식품부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소관하고 있는 법령은 법률 69건, 시행령 70건, 시행규칙 70건으로 약 209건이다. 이 가운데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농지법」, 「농업협동조합법」 등에서 ‘농업인’에 대하여 정의를 규정하고, 관련 법령들은 대체로 이에 따라 농업인의 정의를 준용하고 있다. 위에 기술한 법령에서 농업인의 정의는 대체로 농지의 소유 여부나 규모, 농업종사 여부 등에 따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농지의 소유 여부나 규모에 따른 규정은 상속세법으로 인한 소유, 부당이익 편취를 위한 소유 등 헌법의 ‘경자유전’조항에 벗어난 부재지주의 양산과 왜곡된 농지임대차 문제를 일으킨다. 또한 농업종사여부를 영농일수나 농산물판매액 등에 따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상용외국인 농업노동자와 취미나 부업으로 영농행위를 하는 경우의 자격부여 문제와 진위문제가 있다. 따라서 농민 또는 농업인에 대한 정의를 그 명칭을 포함해서 재정립하는 것은 기존 정책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달라진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령을 정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이다. 농민을 단순히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안전한 먹을거리의 안정적 공급, 자연생태계의 보전, 지역사회의 유지와 발전 등 헤아릴 수 없는 공익적 기능과 역할을 통해 국가와 사회의 안정은 물론 국민행복 증진에 기여하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나아가 농민은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할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과 시장에서도 소외되기 쉬워서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사회발전의 주체로서의 자각과 시대적 요청에 따른 사회적 책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려는 노력을 배가할 때 비로소 진정한 ‘농민’으로 호명될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위기가 심화된 현시대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농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