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재촉하는 아내의 잔소리에 눈을 뜨면 식탁에 소박하게 차려진 아침 밥상. 몽롱한 정신 속에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머릿속에 복기하며, 회사문을 들어서면 언제나처럼 나를 반기는 얼굴들. 그리고 따끈한 모닝커피 한 잔. 정신없이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삶이다. ‘평균적’인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산다. 문득 “나는 왜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라는 회의가 밀려들면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적 체험을 꿈꿀 수 있는 것, 그 또한 일상적 삶이 주는 ‘자유’였다.그 ‘따분한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깨져버렸다. 지난해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상적 삶’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처음 발병할 당시 ‘우한폐렴’으로 불린 이 바이러스에 붙인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용어는 ‘COVID-19’다. 한국 국민에겐 ‘코로나19’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이 고약한 존재에 의해 우리의 일상적 삶이 깨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코로나19에 앞서 인간을 공격했던 사스(SARS·급성 중증호흡기증후군), 조류 인플루엔자(AI), 신종인플루엔자, 그리고 최근의 메르스(MERS·중동 호흡기증후군)는 모두 한가족이다. 이들은 잊을 만하면 불쑥 나타나 인간을 공격하곤 했다.과학자들은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 창궐의 원인으로 3가지를 꼽는다. 인간의 무차별적인 개발로 줄어드는 밀림 내의 바이러스 서식지, 가축을 통한 야생 바이러스와의 잦은 접촉, 밀집되고 연결된 지구촌 등이다. 갈수록 잦아지는 바이러스의 출몰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설명한다.바이러스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길다.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모든 동식물에 들어가 사는 존재다. 전문가 얘기를 들어보면 원래부터 바이러스가 독하진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19나 메르스 등이 속한 바이러스는 본래 감기 정도만 일으키는 ‘순한 놈’이었다는 것이다. 이젠 아니다. 한 번 창궐하면, 감염자에게 치명상을 안겨 죽게 만드는 두려운 존재가 됐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왜 갈수록 독해지고, 발생 주기도 짧아지는 걸까.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인류가 바이러스의 공격에 무참하게 당하는 스토리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영화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다. 흰색 방역복과 장갑, 마스크로 중무장한 의료진. 병원으로 절박하게 몰려드는 환자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백신을 구하는 영웅들의 얘기. 이런 영화 속 장면이 실제 현실 속에 등장했을 때 불현듯 깨닫는다. 잊고 있었던 ‘일상적 삶’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 그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든 일상이 불안하고 위태롭게 느껴지는 요즘, 최고의 이슈는 ‘마스크’다. 이전에는 그렇게 마스크의 종류가 많은지조차 몰랐다. 면 마스크, 부직포 마스크, KF94 마스크 등등.평소엔 관심도 없고, 써본 적도 없던 사람들에게도 이젠 익숙해진 이름이다. 일하면서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어느덧 숨이 답답해지고, 머리까지 아파져 온다. 하지만 겨우 마스크 한 장일 뿐인데도 어떤 이들에겐 한없이 소중한 물품이다. ‘마스크 대란’으로 인해 약국이나 우체국 등에서 판매하는 ‘공적 마스크’ 한 장을 사려고 야외에서 줄지어 밤을 새워본 사람이라면 더욱 실감 나는 현실이다.최근 전국 각지의 새마을부녀회 등이 발 벗고 나서 코로나 예방을 위한 ‘면 마스크’를 만들어 어린이집이나 요양원, 복지시설 등에 전달하는 모습이 언론 보도를 통해 소개되곤 한다. 이들이 만들어 전달한 것은 단지 한 장의 마스크가 아니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자 인류애다. 가볍고 하찮게 여겨졌던 마스크의 존재감이 이렇게 컸던 적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