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 출신이세요?” 이 질문은 한국에서는 금기에 가깝다. 하지만, 유럽에서 이 질문은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처럼 가볍게 물어볼 수 있다. 유럽은 대학 입학이 수월하고, 대학 간 서열이 뚜렷하지 않다. 공립대학체제라 학비도 거의 없다. 일부 대학교 출신이 고위직을 독점하는 일도 거의 없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안정되게 살 수 있다. 출신대학은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 잣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출신대학을 물어도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학비가 비싼데도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입시는 전쟁에 비유되곤 한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부모와 학생은 ‘사교육 열풍’ ‘고득점전략’ ‘정보전쟁’ ‘입시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논란이 된 것처럼 학술지 논문 작성, 우수기관 인턴, 표창장 수상 등 부모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스펙 만들기(정확히는 만들어 주기)는 입시전쟁이 우주로 확대되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열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녀왔다. 능력에 따라 대학을 갈 수 있고, 학력에 따른 적절한 격차(소득격차, 지위격차)는 사회적으로 존중받았다. 최근 대학교-취업-사회적 지위가 하나의 연결고리로 받아들여지면서, 출신학교가 곧 신분이 된 학벌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부유층 사이에서 벌어지는 명문대 진학경쟁은 거대한 사회적 병리 현상이 되었다. 대학별 서열을 구구단처럼 외우고, 그 서열에 따라 취업이나 성공, 심지어 인간적인 대접도 달라진다고 믿는 학벌주의의 벽을 깨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학벌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까? 가능하다. 유럽의 예를 참조하면서 고질병의 원인을 보고, 처방전을 만들 수 있다. 첫째, 격렬한 입시경쟁과 느슨한 대학운영 체제를 느슨한 입시와 엄격한 학사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여러 유럽 국가에서 시행하는 방법이다. 대학입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적 성숙과 학문을 수행할 기초학습능력이다. 이를 갖추고 있으면 가능한 한 대학에 입학시키되, 대학은 엄격한 지적 훈련을 시키고, 정부는 엄격한 국가 수준의 평가를 통해 학구적이며, 창의력이 풍부한 학생만을 3학년에 진급시키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취업중심의 대학이나 다른 길로 유도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재질과 능력과 상관없이, 사교육의 힘으로 얻은 점수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대학에서 스스로 학습하고 연구하지 못하면 도태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달달 외워 대학에 입학하고, 정작 대학에서는 취업준비에 몰두하다가 누구나 졸업장을 받는 현재의 제도는 사라질 것이다. 둘째, 학력에 따른 지나친 보상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고졸과 대졸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최고경영자와 일반 근로자의 급여격차가 적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입시경쟁과 학벌전쟁은 줄어들 것이다. 10대 시절, 점수 몇 점 차이가 커다란 사회적 격차를 만들어 내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불안하다.권위를 앞세우는 권위주의와 갑질 현상은 불안한 사회의 옆모습이다. 우리는 작은 차이-큰 보상이냐, 능력별 적절한 보상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은 가족 중심의 이기적 경쟁사회냐, 서로 존중하는 조화로운 화합사회냐의 선택이기도 하다. 여러 유럽 국가가 위의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게 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그 일이 쉽지 않다. 학벌주의 극복을 위한 전제조건을 먼저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 대학이 거의 다 공립이지만, 한국에서는 4년제 대학의 85%가 사립이다. 이들은 철저한 학사관리와 국가 수준의 인증시험제에 적극 반대할 것이다.학생 수가 곧 학교재정이며, 수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벌주의 극복을 위한 방향은 분명하다. 정부가 재정을 투여해서 사립대학을 공영화하고, 위의 두 가지 개혁을 실천하면 된다. 그때가 되면, 우리도 출신 고향을 묻듯 무심하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