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정책은 적정 농지의 보전과 영농인력의 육성, 농업을 영위할 농민의 소득 증가가 핵심이다. 이에 따른 정부의 수많은 정책에도 농지는 개발로 인한 지속적 감소와 자산증식을 위한 투기장으로 둔갑해 식량생산 등 본연의 기능을 위협받고 있으며, 농업을 영위할 농민은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신규 영농인력의 진입과 육성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역대정부의 정책실패와 함께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렇게 농업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면에는 농업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농민은 항상 대상이었으며 주체로서 참여가 보장되지 못한 측면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농업·농촌·식품산업 기본법」은 농식품부와 시·도, 시·군에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정책심의회’를 두고 각급 행정기구의 장이 생산자단체와 농업인단체장 등을 위원으로 위촉하게 되어 있으나 위원회의 형식적 운영과 위촉위원의 대표성 문제 등으로 농업인에 대한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밖에도 민간이 참여하는 수많은 농업관련 위원회가 존재하나 대부분 임의기구이거나 한시적 성격으로 해당 정책의 수립과 시행, 평가 등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분명하지 않다. 우리나라 헌법 제123조 5항은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들의 자주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와 육성을 취지로 제정된 이 헌법 조항에 따라 상공인들은 1950년대에 관련 법률을 제정하여 자조조직으로서 상공인들의 대의기구인 ‘상공회의소’를 설립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그러나 법률에 근거해 농민의 자조조직으로서 농정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농민의 대의기구는 헌법에 근거조항이 마련된 지 70년이 넘도록 여전히 부재한 현실이다.
법률에 근거한 농민의 공적 대의기구로서 ‘농업회의소’설립에 관한 논의는 1998년 중앙의 농민단체들이 ‘농업회의소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제화를 추진하였으나 공감대부족 등으로 무산되었다. 이후 관련 연구와 논의가 산발적으로 이어져 오다가 2010년 민간의 건의를 정부가 수용하여 ‘민관협치를 통한 선진농정체계 구축’이라는 목표로 시범사업으로 추진되었다. 2021년 현재 전국 17개소(광역1, 기초시군 16)에 농업회의소가 설립되어 운영 중이며, 23개소(광역1, 기초시군22)에서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시범사업기간 동안 이를 뒷받침할 법률제정 발의도 19대 국회 2건, 20대 국회 3건에 이어 21대 국회에도 4건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며, 정부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정부지원을 받게 되면 관변단체가 된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현재 국회와 정부입법으로 추진되고 있는 법률안의 농업회의소의 성격이나 위상, 사업내용을 살펴보면 미미한 차이가 있으나 공통적으로는 법률에 근거한 공적 기구로서 농업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참여하고 조사연구, 교육훈련, 다양한 공익적 서비스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법률의 제정과 시행을 뒷받침하고 농업회의소가 농촌에 튼튼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대의기구로서 민주성과 대표성,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민간이 주도하고 행정이 지원하는 유기적 파트너십도 구축 등 과제도 만만치 않다.
자연과 함께 이루어지는 농업은 정부정책과 시장의 실패가 어느 산업보다 쉽게 일어나는 특수성이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직접적 이해당사자이자 농업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농민의 정책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민주주의의 발전정도와 지속적으로 확대시켜야 할 자치와 분권 등을 감안하면 농민도 ‘농업회의소’라는 장치를 통해 농정의 주체로 나설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