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휴가는 참으로 덧없이 지나갔다. 이열치열 작전이 패착이었다. 한낮 40도가 예보된 날이었는데도 겁 없이 산행을 나서면서 동티는 시작됐다. 불암산 수락산 일대를 호기롭게 6시간 이상 걷고, 집에 돌아와 땀을 씻고,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잠들 때까지는 좋았다.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는 순간 코에서 뜨끈한 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머리도 지끈지끈했다. 콧물에 기침까지 심해 네댓새 감기약을 달고 살았다. 열로 열을 다스려 보려 한 무모함은 휴가를 병가로 쓰는 대가를 치르게 한 셈이다. 올해 무더위는 그냥 무더위가 아니다. ‘기록적인 폭염’ ‘1백11년 만의 폭염’ ‘살인적 폭염’ ‘초열대야’처럼 강력한 수식어가 붙어야 느낌이 온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7월 31일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기온이 40도인 적은 딱 한 번이었다.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에서 1942년 8월 1일 기록된 40도가 그것이다. 8월 들어서면서 그동안의 폭염 기록은 깨지는 존재에 불과했다. 8월 1일 강원도 홍천이 41도까지 치솟는 등 5곳에서 40도 이상을 나타냈다. 서울도 39.6도까지 올라 기존 최고 기록이던 1994년 7월 24일의 38.4도를 훌쩍 넘어섰다. 이후에도 2주일 폭염은 이어졌다.기상청이 발표하는 기온, 특히 여름철 기온은 실제 느끼는 온도와는 차이가 있다. 바람이 잘 통하는 풀밭 1.5미터 위에 설치한 백엽상 속 온도계로 측정하는 탓이다. 폭염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노인이나 빈민처럼 자기방어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회적 고립계층은 더 큰 고통을 받는다. 1995년 7월 중순의 일주일 동안 체감온도가 52도까지 치솟은 시카고에서는 7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는 주로 노인이었고, 사망자가 많이 나온 지역은 인종차별이나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파악된 곳과 대부분 일치했다. 이 사건을 다룬 ‘폭염사회’라는 책에서 저자인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약자를 테러하는 사회적 재난’으로 폭염을 규정했다.다행스럽게 한반도에 몰아닥친 올해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는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대처해야 할 만한 현상도 나타났다. 폭염기간 인천국제공항에 몰린 어르신들이 그렇다. 쾌적한 공간을 무료 열차로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노인분들이 인천공항을 피서지로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관련 인프라가 부족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머지않은 장래에 베이비부머들이 노년층에 대거 합류한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사회적 공감대를 모아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1995년 7월 시카고’가 우리 사회에 그대로 나타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의 기록적 폭염에 대해 기상청은 이채로운 분석을 내놨다. 이례적으로 일찍 끝난 장마, 강력해진 고기압 세력, 고기압에 가로막힌 태풍 등 “폭염이 생길 만한 조건을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올해 폭염은 특별하다는 것이다.기상청 분석에도 폭염은 앞으로 더 자주 더 강력한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온실가스 때문인 지구온난화가 폭염 강추위 폭설 같은 이상기후를 가져올 것이라는 환경론자들의 주장도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온실가스-지구온난화-이상기후’가 고리로 연결돼 있다면 이상기후를 줄이는 방법론은 결국 지구의 건강성 회복으로 귀결된다. 그런 점에서 올해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에너지 제로 하우스’가 주목받은 것은 당연하다. 고효율 단열 설비를 갖추고 태양광 및 지열을 이용함으로써 화석연료 사용량을 최소화하면서도 불볕더위와 강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주택이 늘어난다면 지구의 건강성에 크게 보탬이 될 것이다.말복 이후 주춤했던 폭염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지만 절기를 이기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올해 폭염도 기억의 한쪽으로 밀려날 것이다. 그렇더라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구의 건강성 회복에 대한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