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국민이 또 있을까. 이 땅에 커피 문화가 전해진 지 불과 1백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커피는 우리 일상에 가장 친숙한 음료가 되었다. 2014년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한국 성인 남녀 한 명이 하루 평균 마시는 커피가 1.7잔이라고 하니, ‘밥 먹듯이’ 커피를 마시는 셈이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끼리 “언제 식사나 같이할까”라고 했지만, 이제 “커피 한잔할까요”라는 인사가 더 친근하게 들릴 정도다. 맛있는 밥집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커피 맛이 좋은 카페에 손님들이 모이니 말이다.커피 마시는 문화도 진화해왔다. 일회용 인스턴트 커피가 커피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다방에서 커피 전문점으로 바뀌면서 한 시대가 지나갔다. 최근에는 커피 소비자가 직접 원두를 사서 로스팅하는 적극적인 소비문화도 점차 확산하는 분위기다. 인스턴트 커피와 커피 전문점에서의 소비를 굳이 제1의 커피 물결, 제2의 커피 물결이라고 명명한다면 원두가 직접 유통되고, 소비되는 제3의 커피 물결 단계까지 와 있다고 볼 수 있다.커피는 단순한 음료, 또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현대인의 소비 행태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다. 커피 전문점을 찾는 목적도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 타인과의 소통, 공부 공간, 여가 시간 활용 등 가지각색이다. 현대인에게 커피는 ‘여유’와 ‘휴식’, ‘소통’을 상징하는 문화이자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됐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신성한 종교의식처럼 여긴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거리에는 무려 2천여 개의 카페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모든 커피 문화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실제로 지구 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 때문에 오는 2050년 세계 커피 생산지역이 현재의 절반으로 감소하고, 2080년에는 야생커피가 멸종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세계 3위 커피 생산국가인 콜롬비아를 비롯해 브라질,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등 많은 커피 재배 국가들이 지구 기온 상승과 강우 패턴 변화, 질병 등으로 말미암아 생산량과 품질에 타격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측면의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커피 원두 가격이 꾸준히 올라가는 추세다.기후변화 때문에 산업 전반이 피해를 보는 건 커피뿐만이 아니다. 기후 변화가 농업용수의 안정적 확보를 어렵게 하고, 경작 가능한 토지 면적을 축소해 농작물 수확량을 감소시킬 것이란 우려도 있다.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한 연구 보고서는 21세기 중반까지 인류의 식량 수요가 지금보다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인구 증가에 따라 식량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기후변화 때문에 식량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다.올해 지구촌은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불볕더위와 찜통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애리조나 주 등 미국 남서부 지역은 연일 기존의 최고치 기록을 깨는 불볕더위가 덮쳤고,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40도가 넘는 가마솥더위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우리도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시달리긴 마찬가지다.과학자들이 이 모든 불행의 주범으로 인간을 지목한다. 기후변화가 태양의 변화나 자연적 요인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온실가스 배출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UC어바인) 연구팀도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가 살인적 폭염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연구를 게재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이 결국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얘기다. 커피의 종말은 결국 인간의 종말을 예고하는 전주곡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