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세상 살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들이 늘었다.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온갖 충격적인 사건과 안전사고, 열심히 일한 정도와 비례해서 개선되지 않은 생활 형편에 대한 불만 등이 함축된 표현일 것이다. 분명히 10년이나 20년 전과 비교하면 국가 경제 규모는 엄청나게 커지고 부강해졌는데도 사람들은 개인의 삶은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 자신에게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고, 불평등하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오히려 예전이 더 좋았다”며 과거를 그리워한다. 왜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굳이 분석해보자면 몇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우선 1차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감 등이 예전보다 느슨해진 점을 들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성격과 규모의 사회에 속해 있다. 가족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학교나 직장, 동호회와 단체의 일원일 수 있다. 1차 집단은 구성원 간 직접적 만남과 접촉, 친밀한 관계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가족이나 또래 집단이 대표적이다. 2차 집단은 직접적인 접촉보다는 이메일이나 메신저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특정 목적이나 이해관계에 의해 형성된 집단이다. 1차 집단이 없는 경우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감이 떨어지고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현대인들 사이에선 소속된 1차 집단의 수가 줄어들고, 가장 원초적인 1차 집단인 가족조차 견고한 연대감이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 공동체와 가치관을 허물어뜨리는 ‘사회의 급속하고 격렬한 변화’도 개인의 불안감을 키운다. 시민혁명이나 산업혁명과 같은 사회적 격변기에는 기존 가치관과 도덕관, 행동규범이 무의미해지는 ‘아노미(Anomie)’ 상태를 겪게 마련이다. 하루가 다르게 몰라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도 특정인에겐 기술진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노년층에 가까울수록 더 심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개인의 자유의지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법과 제도, 집단적 문화와 규범 등, 유·무형의 각종 ‘사회적 압력’도 개인의 행동과 심리를 압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여기에다 각 개인이 처해 있는 사회적, 경제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에 따른 영상과 음성 매체의 급속한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시공간의 개념을 없애버린 각종 전자매체는 정보 전달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여론 형성 및 조정 기능, 사회화 기능, 오락기능까지 담당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인 역할이나 자아창출 능력은 왜소해지고, 방송이나 매체가 주입한 ‘만들어진 자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결국, 개인은 사회를 떠나선 살기 어렵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인 ‘행복’이나 ‘건강한 자아의 실현’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획득할 수 있다. 자신이 참여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지위를 차지하며, 그에 대한 역할 기대를 받는다. 사회적 기대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의미다. 특히 가족이나 친족집단과 같은 1차 집단의 역할은 매우 크다. 그런데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지역사회나 친족 집단과 같은 공동체가 대부분 해체돼 버렸다. 그나마 남녀 간의 사랑에 의해 유지되던 핵가족마저 최근에 해체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제 ‘민족 멸종’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해체 위기에 닥쳐 있는 한국사회가 건강성을 되찾을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건강한 공동체의 복원’이 급선무라고 본다. 특히 시대 변천에 맞춰 매번 새로운 과제와 역할을 제시해온 새마을운동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려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마을운동의 역할을 놓고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