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포항의 지진으로 수능시험이 갑자기 일주일 연기되었을 때, 수험생들이 시험을 하루 앞두고 내다버렸던 교과서와 참고서들을 부랴부랴 다시 찾는 장면이 보도된 적이 있다. 지긋지긋한 학생(더 정확하게는 수험생)의 신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는 열망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확인시켜준 일이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애쓴 시간이 혐오스러워 지워버리고만 싶은 것이다. 한국 교육의 중대한 맹점은 <성적>에 골몰하느라 <성숙>을 놓치고, 외형적인 <성공>에 집착해 인간적인 <성장>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체격은 빨리 크고 세상의 이런저런 속사정을 알아차리면서 조숙한 욕망에 눈을 뜨지만, 성인기로 이행하는 경로는 비좁고 희미해진다. 일찍부터 어른 흉내를 내지만 심리적으로 자립하지 못한다. 그 결과 유아적 만능감과 패배주의적 허무감의 양극을 오가면서 철부지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 배경에는 모든 세대가 예전보다 나이에 비해 더 어려지는 퇴행 현상이 깔려 있지 않은가 한다. 균열된 성장 루트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청(소)년들이 온전하게 성장하려면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지고 생각만이 아니라 감정도 표출할 수 있는 공간, 자신의 매력적인 모습이 드러나고 격려와 지지의 갈채를 받을 수 있는 만남이 절실하다.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상호작용과 지적 교섭이 일어나는 가운데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주체적으로 관계를 열고 사회를 창조해나가는 힘을 자각할 수 있다. 세상은 전쟁터가 아니라 나의 존재가 펼쳐지는 무대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경쟁 상대가 아니라 더불어 좋은 삶을 만들어가는 친구나 이웃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어떻게 하면 그런 자각이 일어날 수 있을까. 김선호 교사는 [초등직관수업]이라는 책에서 스카우트 활동을 사례로 제시한다. 우선 5~6인의 아이들이 한 모둠이 되어 지도 한 장과 함께 열 가지 정도의 미션을 부여받는다. 예를 들어 안중근 기획전에 가서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우다’라는 뜻의 한자를 적어온다거나, 외국인에게 한국에 관한 주어진 질문들을 던져 답을 받아오는 것 등이다. 아이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정해진 지역을 찾아가서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데, 명예 교사인 학부모가 한 명씩 배정되어 안전을 감시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원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뒤따라간다는 것이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더라도 절대로 관여하지 않고, 위험한 상황이다 싶을 때만 개입한다. 이렇듯 최소한의 간섭 속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을 경험하면 만족도가 높고 미션을 완수하지 못해도 깊은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교사와 부모가 파트너가 되어 안전함을 지켜주는 가운데 학교 밖 공간을 탐사하는 아이들은 불확실성을 다루는 기법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시행착오가 학습 일부임을 배우면서, 우연과 돌발 상황에 대해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혼돈을 겪고 미로를 헤매는 자신을 긍정하고, 좌충우돌해도 세상이 자기를 밀어내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긴다. 실패에 대한 내성과 회복력이 자라나는 것이다. 도태에 대한 공포심이 만연한 시대에 아이들이 사회와 다양하게 접속하는 경험은 존재의 안정감을 심어주고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의 싹을 틔운다. 그렇게 해서 축적되는 자존감은 개개인에게 지속 가능한 존립의 기반이 된다. 당장 취업이 되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를 사회에서 격리시키지 않고 삶을 창조해갈 수 있는 바탕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사회 자체가 안정적으로 재생산되는 토대가 된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을 가꾸는 데 소홀했고, 성장 기조가 급격하게 둔화되면서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교육은 그 복구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학교의 몫이지만, 교사들이 오롯이 떠맡기에는 너무 버거운 과제다. 따라서 학교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