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설 연휴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입춘마저 훌쩍 지났다. 한 해 24절기 중 첫째로, 봄의 시작을 알린다는 입춘. 올해의 행운과 건강, 경사를 기원하는 글귀인 입춘첩(立春帖)을 대문에 붙이거나 지인에게 나눠주는 정겨운 풍경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속속 등장하건만, 필자의 마음은 여전한 추위처럼 아직도 겨울의 중간쯤에 자리해 있다. 설 연휴기간에 벌어진 가족 갈등 때문이다.올해 스물한 살이 된 딸아이의 생활습관과 관련해 아버지로서 무심코 던진 핀잔 어린 지적 하나가 부녀간 말다툼으로, 급기야 가족 전체의 갈등으로까지 비화하고만 상황. 이 어이없고, 절대 의도하지 않은 사태를 대체 어찌 이해해야 할까. 여태껏 이렇다 할 명절증후군조차 겪어본 적 없던 터라, 충격의 강도는 자못 크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위해, 그리고 ‘꼰대’ 취급받지 않으려면 다른 집 가장들이나 마찬가지로 그저 참고 기다릴 수밖에.가족은 사회활동과 경제생활의 기초단위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협력하며 꿈을 키워갈 때 사회와 국가도 발전한다. 그 무엇도 가족을 대체할 순 없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한 가족의 가치를 새삼 일깨울 계기여야 할 명절이 언제부턴가 가정불화, 심지어 가족파괴의 원인으로 전락해버린 세태가 서글프다. 실제로 설·추석 연휴기간의 가정폭력 신고는 해마다 많이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의 ‘명절 연휴 가정폭력 112 신고 현황’에 따르면, 2014년 7천7백37건이던 명절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015년 8천4백91건, 2016년 1만6백22건으로 급증했다. 이는 명절 연휴기간이 아닌 평일 하루 평균보다 50%가량 증가한 수치다.온 가족이 모여 집안 어른들 안부를 여쭈고 친지와 따뜻한 덕담을 나눠야 할 명절 연휴가 실상은 가장 빈번히 가정이 파괴되는 시기로 급변한 셈이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가 사라지는 현상을 연구한 결과는 이미 나왔다. 2월 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내놓은 ‘동아시아 국제사회조사 참여 및 가족 태도 국제비교연구’ 보고서가 그것이다. 2006년과 2016년 전국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비교를 통해 가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분석한 이 보고서를 보면, ‘아버지의 권위는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한 응답은 2006년 84.3%에서 2016년 78.1%로 떨어졌다. ‘자식은 부모에게 명예가 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거나 ‘가계 계승을 위한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찬성 응답도 각각 74.7%에서 63.7%, 56.7%에서 40.8%로 낮아졌다.‘자기 자신보다 가족의 안녕과 이해를 우선해야 한다’는데 찬성한 응답도 79.9%에서 69.7%로 하락했다.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데 동의한 비율은 남성은 8.1%에서 17.2%로, 여성은 12.4%에서 24.4%로 상승했다.이 보고서가 전하는 메시지는 미혼율이 높아지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가족 가치관은 쇠퇴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그러한 가치관에 기초한 현 가족정책들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이처럼 뚜렷한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예전 같지 않은 아버지의 권위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특히 젊은 층과 여성에게서 두드러지는, ‘가족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의 가치관 이동은 궁극적으로 전통적 가치를 지켜옴에도 그 가치를 다음 세대에겐 요구하기 어려운 ‘낀 세대’인 50~60대 가장들이 먼저 가족 모두에 대한 이해와 존중, 배려에 나서야 함을 시사한다. 그래, 한시도 잊어선 안 될 너의 이름은…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