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배추와 무, 대파에서 시작된 농산물가격 폭락현상이 품목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현재는 양파와 마늘 가격 폭락으로 농촌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정부에서도 각종 수급안정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가격이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농산물가격의 폭락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에서 비롯되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우리나라 농업의 수많은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연대기의 저곡가 저임금정책, 세계화에 따른 농산물시장 개방과 농업구조조정정책, 비교우위론에 따른 농업경시 등 정책적 문제와 농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조직화하지 못하고 있는 농민의 처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작금의 양파와 마늘을 비롯한그동안의 농산물 가격안정 대책 또한 공급과잉 시 수매와 비축을 기본으로 산지폐기와 시장격리 등 단기처방이나 사후대책 수준에 머물기 마련이었다. 물론 마땅한 제도적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기상여건에 따른 풍흉(豊凶) 등 미미한 생산량 증감에도 가격 등락(登落)에 크게 영향을 받는 무·배추·마늘·양파 등 민감 품목에 대하여 가격폭락 시 일정 생산량의 매입 등을 통해 평년가격의 80%를 보전하는 ‘채소가격안정제’를 2017년부터 시범실시하고 점차적으로 품목과 물량을 확대해 나가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예산확보의 어려움으로 계획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논농업직불제를 비롯한 각종 직불제의 ‘공익형 직불제로 확대·개편’ 또한 추가 예산확보가 불가피한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농산물가격 안정 대책 또한 단기적, 사후대책이 아닌 농업문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에서 찾아야 한다. 우선은 농업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즉 농업이 산업화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사양산업이나 식량은 언제든지 수입이 가능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한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업·농촌의 유지와 발전이 필수적인 전제조건임을 인식하고 수용해야 한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현재 지구적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생산의 불안이 이를 웅변한다.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농업·농촌의 유지와 발전이‘지방소멸’을 막고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과 환경생태계의 보전에도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재정투입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농민 또한 ‘돈’을 우선시하는 농사에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는 농사’로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의 재정투입 확대는 납세자인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안전한 먹거리의 안정적 공급, 아름답고 쾌적한 국토환경 보전,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 지역경제 활성화 등 농업·농촌의 본래 기능인 공익적 가치를 회복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일은 개별 농민의 노력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농민 스스로 함께 협동하고 조직화해야 한다. 이는 우선적으로 자율적 수급조절 능력과 시장 교섭력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정부 정책을 견인하고 실천할 기본적인 힘을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 또한 경쟁력 중심의 개별 농민 지원보다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는 농민과 농민조직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농민들의 경제협동조직인 품목별 협동조합 결성과 농민의 정책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농업회의소 설립 등 농민조직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