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 강보람 씨SNS 활용해 마케팅·판로확보…홍콩까지 수출
농업을 파고든 고구마 집 딸래미 강보람(26) 씨는 어린 시절, 귀농한 부모님을 따라 김제에 정착했다. 고구마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제대로 실패를 맛보았다. 그녀는 “부모님이 귀농 후 주먹구구식으로 농사만 짓다 보니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남들처럼 겨울에 팔려고 저장한 고구마가 모두 썩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셨던 것”이라며 “당시 진 빚이 오억 원 정도였으니 부모님도 상심이 크셨다”고 말했다. 이에 농업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던 그녀에게 부모님은 도리어 농업을 제대로 배우면 희망이 있다고 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강 씨는 결단을 내렸다. 강 씨는 “농업을 제대로 공부해서 농사를 지어보자. 젊은 내가 지은 좋은 고구마를 제값 한번 받고 팔아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한국 농수산대학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농사현장에서의 어려움을 겪다하지만, 마음만큼 길이 금방 열리는 건 아니었다. 졸업 후 농사를 시작하려니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먼저 따라왔다. 취업을 못해서일까, 공부를 못해서일까. 젊은 여자가 농사를 짓는다니 무언가 흠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무성하게 번졌다. 그녀는 “밭에 나가기는커녕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로만 농사를 시작했다. 인터넷 판매, 블로그 홍보만 하다 보니 고객과의 소통도 어려웠다.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운 게 전부이고 실제 경작지의 농사는 다르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밭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직접 키우고 농사지어야 소비자들에게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고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고구마에 브랜드를 입히다 보람 씨가 농사에 뛰어들기까지 부모님은 그저 농사만 지을 뿐, 농장이름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판로개척도 쉽지 않았다. 강 씨는 스스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그녀는 “우리 농장에 필요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은 농장이름과 브랜드를 만드는 거였다. 박스를 제작하고 쇼핑몰도 만들었다. 아빠와 딸이 함께하는 고구마농장이란 이야기를 더했다”고 전했다. 강 씨에게 아버지는 환상의 짝꿍이다. 고구마 전문가인 아버지는 우리 땅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최고의 고구마를 생산하고, 그녀는 마케팅을 맡았다. 서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위치에서 각자의 일을 알려주고 배우고 소통하며 ‘강보람 고구마’를 탄생시킨 것. 그리고 그 과정은 자연스레 ‘강보람 고구마’의 스토리가 되었다. 그녀는 “마케팅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고 혼자서 개척하다 보니 스토리텔링이 뭔지도 모르고 브랜드에 이야기를 입혔다. ‘강보람 고구마’는 저 자체가 브랜드이다 보니 SNS에 올리는 농사일기나 한해 농사과정이 고스란히 스토리텔링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SNS와 블로그 활용해 판매포장상자에 보이는 실명 브랜드와 눈에 잘 띄는 특별한 디자인, 여기에 농사를 지으며 본격 활용하게 된 SNS는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닌,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도 도움을 줬다. SNS와 블로그로 직판하는 고구마의 물량은 전체 수확량 중 30%를 차지할 정도. 나머지 70%는 도매시장으로 출하되는데, 스토리텔링으로 차별화한 덕분에 ‘강보람 고구마’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올해부터는 홍콩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강보람 고구마’뿐만 아니라 황토 땅에서 길러 품질 좋은 김제 고구마가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저 혼자가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고구마 마을을 만들어 마을 주민 모두가 판로 걱정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료제공 : 전라북도귀농귀촌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