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중앙회는 도시화·산업화에 따라 해체되어 가는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이에 새마을운동신문은 우수공동체 사례를 연재해, 자기중심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감천문화마을은 마을의 특색과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했던 지역 예술인과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치면서 활력을 되찾았다. 2009년 10점의 조형예술 작품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한해 1백만 명의 관광객은 물론 마을을 벤치마킹을 하기 위한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부수고, 새 건물을 짓지 않아도 달동네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마을, 바로 감천문화마을이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 감천동은 한국전쟁 당시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 근현대사의 흔적과 기록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또한,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독특한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는, 골목을 마치 미로처럼 얽히게 만들었다. 이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 때문에 감천동은 한때, 부산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꼽혔다. 또한, 산업화 과정에서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들고 빈집이 늘자 많은 주민이 ‘하루빨리 이 달동네를 벗어나겠다’라는 다짐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계단식 주택과 모든 길이 통하는 미로 골목길은 감천문화마을의 상징이자 최고의 자랑이다.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감천동의 특색과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2009년부터 지역 예술인과 마을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었고, 이듬해 빈집과 골목길을 활용한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로 새로운 문화공간 조성에 성공한 덕분이다.이제 감천문화마을의 미로처럼 얽혀진 골목길은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옛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창조적 도시재생‘한국의 산토리니’ 감천문화마을은 이제 ‘달동네’로 불리는 대신 ‘한국의 산토리니’ 또는 ‘한국의 마추픽추’라고 불린다. 독특한 장소성과 파스텔톤의 색채,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마을의 원형은 보존하면서도 문화적 재생을 통해 활기찬 문화마을로 다시 살아났다.이와 같은 창조적인 도시재생은 재개발·재건축 대신 주민공동체 중심의 보존과 재생을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을이 점점 쇠퇴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주민대표·예술가·행정이 손을 잡고 각종 공모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술가는 감천동만의 독특한 환경을 자원으로서 가치를 높이 샀고, 주민은 자신감과 가능성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보존과 재생이라는 기본개념을 바탕으로 생활친화적인 마을을 만들자는 인식의 공유가 큰 기둥이 되어 ‘달동네 감천동’이 ‘한국의 산토리니’로 탈바꿈했다.마을 속 예술 공간‘작가공방’ 2009년 마을 미술 프로젝트로 시작된 마을공동체 조직은 2012년 비영리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정식적인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 음식점 등을 마을기업으로 운영하면서 주민공동체의 자립기반이 조성되고, 주민 일자리 사업단을 꾸려 전문가들의 지도로 도자기, 천연염색, 목공예 등의 작품을 제작·판매하는 등 주민 일자리도 창출됐다.감천문화마을 주민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도심재생의 마을 만들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업하고 있다. 한 예로 감천문화마을에는 골목골목 작가들의 작업실, 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도자기 공방 <흙 놀이터>, 천연염색공방 <천연염색 회윤>, 서양화 공방<감천 연가>, 생태공예공방 <소똥갤러리>, 카툰공방 <카투니스트 네가지>. 이처럼 분야와 색깔이 천차만별인 작가공방들은 대부분 빈집을 리모델링해 예술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꾸민것이다. 또한,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체험활동을 하고, 작품 구입도 할 수 있다.<자료제공:한국지역진흥재단>